[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대한민국 여군은 현재 1만 명을 넘는 수준으로 국군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중이다.
이들의 역사는 71년 전 오늘(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9월 6일 여자 배속장교 출신 11명이 모여 '여자의용군'을 모집했는데 이들이 대한민국 최초의 여군이 됐다.
당시 최초 선발 예정 인원은 500명 수준이었으나 지원자는 무려 300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많은 여성이 전쟁이란 참혹한 상황 속에서 나라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나섰다.
훈련을 거친 여군들은 정훈대대, 정보 및 첩보부대, 예술대 등은 물론 전방 군단 및 사단까지 다양한 부대에서 활약을 펼쳤다.
해군 최초의 여군인 해군 여자 의용군은 육군보다 먼저 창설됐는데 해병대에 자원한 126명의 여성들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태극기를 가슴에 두른 채 입대했다.
공군의 경우 전쟁이 발발하자 여군들이 임무 수행을 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모든 여자 항공병들을 귀가 조치 시켰으나 이 중 26명이 다시 복귀해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전쟁 당시 직접 전투에 참가한 여군들은 흔치 않았으나 이들의 활동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의용군 1기생 김명자 소위는 경비행기를 타고 적 지역 상공에 침투해 적의 투항을 권유하는 전단을 살포하는 임무를 맡았다.
인민군이 총격을 가하는 상황에서도 고도를 높였다가 다시 하강하여 전단을 뿌리는 등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많은 여군들의 희생도 뒤딸았다.
1951년 2월 4일 경남 창원에서 대적 귀순 공작활동을 하던 곽용순 하사가 적의 포탄에 의해 임무 수행 중 전사했다.
"남녀를 막론하고 이 시국을 재인식하여 국가 총력으로 최후의 평화를 획득할 때까지 싸워야 할 것이다"
최초의 육군 여자 의용군 훈련대장 김현숙 예비역 중위의 말처럼 노력과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최초의 여군 이후 군대에서 여군들의 활약과 비중 점차 높아지고 있다.
여성 최초 보병대대 지휘관이 탄생하는가 하면 아파치 공격 헬기부대 등을 지휘하는 항공작전사령관, 여군 최초 전투비행대장과 첫 여군 함장도 탄생했다.
그리고 많은 여군들의 나라를 위해 제 역량을 갖추고 여성들의 군 복무 여건 보장을 위하여 오늘도 끊임없이 땀 흘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