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임진왜란 때 '곤장'을 맞은 장군이 있다.
이순신에 이어 '삼도수군통제사'가 됐던 원균이다.
삼도수군통제사는 당시 하삼도(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수군을 통제하는 직책으로 종 2품에 해당하는 높은 관직이었다.
이런 원균에게 곤장을 내린 사람은 바로 도원수 권율. 지금으로 말하면 국방부 장관이 해군 참모총장을 불러 폭력(?)을 행사한 것과 다름없다.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에 있었을 때, 원균은 "삼도수군통제사가 겁을 먹고 병사를 움직이지 않는다"며 이순신을 비판했었다.
그랬던 원균은 도리어 자신이 삼도수군통제사에 오른 후에 좀처럼 병사를 움직이지 않았다. 부산과 거제도에서 일본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보고 나서는 더욱 위축된 모습이었다.
원균 또한 이순신처럼 일본이 차지하고 있던 부산을 공격하는 것이 무리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이러한 이유로 출전을 거부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도원수 권율은 이런 원균을 크게 질책했고 나아가 부산을 치라고 명령했음에도 움직이지 않는 원균을 불러 곤장까지 치기에 이르렀다.
수군을 통제·총괄하는 책임자였던 삼도수군통제사가 곤장을 맞았다는 건 당시로서도 엄청난 수모였다. 이 수모를 어떻게든 극복하고자 했던 원균은 수군 3만 명과 함선 200척을 이끌고 출전했다.
이는 당시 조선 해군이 가지고 있던 전체 전력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정유재란 첫 전투였던 칠천량 해전에서 1천여 척의 일본군에게 원균이 이끈 조선 수군은 대패했다.
전투에서 패한 원균은 도주 중에 일본군에게 습격을 받아 전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1957년 8월 27일(음력 7월 15일)이었다.
전투 이후 조선 수군의 남은 전력은 경상우수사 배설이 이끌고 도망친 12척이 전부였다.
제해권을 상실한 조선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이 이순신 장군을 다시 복권하여 삼도수군통제사로 기용했다. 선조가 수군을 없애려 하자 이순신 장군은 다음과 같은 장계를 올린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전선 12척이 남아 있나이다. 죽을힘을 다하여 막아 싸운다면 능히 대적할 수 있사옵니다. 비록 전선의 수는 적지만 신이 죽지 않는 한 적은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남아있던 조선 수군 12척은 명량 앞바다에서 세계 해전사의 역사를 다시 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