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대한민국 재계를 대표하는 양대 산맥을 꼽으라 하면 이견 없이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과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이다.
한국의 경제를 짊어진 두 거목이었지만 두 사람의 출발선은 달랐다.
이 회장은 양반 가문의 도련님으로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공부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삼성상회를 차렸다.
반면 가난해서 중학교 진학도 못 했던 정 회장은 아버지가 소를 팔고 받은 돈으로 도망쳐 복흥상회라는 쌀가게의 배달원으로 시작해 주인이 됐다.
광복 전부터 목돈을 벌어들여 이승만 정권 시기 국내 제1의 재벌로 올라선 이 회장과 갖은 시행착오를 거쳐 50년대 후반 성장가도에 오른 정 회장은 80년대에 이르러 대한민국 재계 대표 라이벌로 성장했다.
정 회장은 이 회장의 타고난 부와 여유로움을 부러워했다고 한다. 더불어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이 회장 앞에서 정 회장은 배움이 짧은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와 관련해 하나의 일화가 전해지는데 이 회장 역시 정 회장에게 부러워하고 열등감을 느끼는 게 있었으니 바로 정 회장이 아들을 서울대에 보냈다는 것이었다.
정 회장의 여섯 번째 아들이었던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하자 정 회장은 잔치를 열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다고 한다.
반면 이 회장의 자녀 중 서울대를 진학한 사람은 없었다. 이 회장은 생전에 '왜 우리 집안에 서울대 합격한 사람이 없냐'고 한탄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첫째 아들 이맹희 전 CJ 명예회장은 도쿄농업대학, 둘째 아들 이창희 전 세한그룹 회장은 가쿠슈인대학, 셋째 아들 이건희 회장은 연세대에 진학한 뒤 와세다대학에 갔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정 회장은 사석에서 "이병철이 아들은 서울대 못갔잖아?" 하며 득의만만했으며, 그 자부심을 가능하게 해준 정몽준 이사장을 특별히 아꼈다고 한다.
이 회장이 그토록 바라던 꿈을 이뤄준 건 그의 손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87학번으로 입학했다.
동양사학과에 진학한 건 할아버지의 뜻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이 "경영학은 나중에도 금방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을 이해하는 폭을 넓힐 수 있는 인문학을 전공하라"고 권유했다는 것.
할아버지의 조언대로 이재용 부회장은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다음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 경영대학원과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경영학박사 과정을 밟으며 엘리트로 성장했다.
이런 이유인지 이 회장을 향한 이재용 부회장의 존경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고, 전공 탓인지 이재용 부회장의 취미 중 하나는 '고지도 수집'이라고 한다.
할아버지의 기대를 안고 성장한 이재용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2014년 갑작스럽게 쓰러진 후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기 시작했다.
2018년 기록적인 반도체 호항을 기록하며 영업이익 58조 원을 달성했다.
2019년 4분기 실적은 영업이익 7조를 넘어서면 어닝 서프라이즈를, 2020년 3분기에는 12조 3천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우수한 경영실적을 거뒀다.
매해 환경이 급변하는 스마트폰과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세계 TOP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이병철 전 회장의 꿈을 이룬 이재용 부회장의 뛰어난 경영능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