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전준강 기자 = 지금으로부터 429년전인 1592년 4월(음력). 왜나라(현재의 일본)는 급작스럽게 조선을 침공했다.
부산 앞바다를 통해 조선 땅에 상륙한 왜군들은 '임진왜란' 개전 20일 만에 한양을 점령했다.
당시 조선의 임금이었던 선조는 의주로 피난을 갔다. 전란은 전국으로 퍼져나가며 조선 백성을 고통에 빠뜨렸다.
머지않아 조선이 왜나라에 점령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조금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조선의 육군 덕분이 아니었다. 바로 바다를 수호하는 '해군 제독' 이순신 장군 덕분이었다.
개전 이후 이순신 장군에게만 100여척의 배를 잃은 왜나라 수군 우두머리 와키자카 야스하루와 구키 요시타가는 다시금 조선 수군 몰살을 계획했다.
이순신 장군은 너무나도 많은 배를 이끌고 들어오는 그들을 보고 도망치지 않았다.
왜나라 수군에게 조선 상륙을 허용하면 조선의 바다와 식량을 책임지는 전라도 곡창지대가 위험했다.
이순신 장군은 전라 우수사 이억기, 경상 우수사 원균의 함대 등을 모아 총 55척의 배를 이끌고 진군했다. 거제도 앞바다에서 왜나라의 배 70여척과 맞닥뜨렸다.
이미 이순신 장군은 와키자카의 스타일, 진군 속도 등을 알고 있었다. 그곳의 지형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던 이순신 장군은 왜군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했다.
미끼를 활용해 왜군 전체를 유혹했다.
와키자카는 그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조선 수군이 공포에 젖어 퇴각한다고 판단한 와키자카는 전군을 한산도 앞바다로 전진시켰다.
이들이 한산도 앞바다로 당도할 무렵, 3개 부대로 나뉘어 학익진을 형성한 조선 수군은 일제히 왜군을 향해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이 공격으로 왜군의 배 47척이 침몰했다. 조선 수군은 왜군의 배 12척을 빼았는데 성공까지 했다. 조선 수군의 완벽한 승리이자 대승이었다.
1592년 음력 7월 8일에 일어난 이 전투는 '한산도 대첩'으로 불린다. 이순신 장군의 승리 중 가장 큰 승리로 꼽힌다.
승리 자체도 컸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 야욕을 꺾어버린 위대한 승리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