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6일(월)

조선시대 기찻길에서 철로 베고 자다가 단체로 '목' 잘려나간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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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한국의 철도 역사도 어언 120년이 지났다. 


지난 1899년 9월 18일 경인선 개통으로 시작된 한국의 철도는 이제 지하철, KTX 등으로 발전해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교통수단이 됐다.


하지만 한국에 처음 철도가 생겼을 때, 기차와 전철은 편리하면서도 차갑고 난폭한 기계였을지도 모르겠다. 


120여 년 전 서울에는 전철이 오갔다. 당시의 여름도 오늘의 여름처럼 상당히 더웠던 듯하다. 밤이 되면 무더위를 피해 야외에서 자는 사람들이 그때도 있었다. 


tvN '미스터션샤인'


기차가 다니는 철로는 이들에게 훌륭한 베개가 됐다. 전통인 베개였던 목침과 크기와 형태가 유사했고, 밤공기에 차게 식은 철로의 냉기는 더위를 식혀주는 좋은 수단이었다. 


1901년 서울의 한 미국인은 "우리는 기운을 잃은 유령들처럼, 차디찬 그리고 그들에게는 안락한 철로에 목을 베고 하얀 옷을 입은 채 길게 누워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고도 했다.


보통 전차의 운행 시간을 알고 있기에 사람들은 막차가 지난 후에야 비로소 돗자리를 깔고 철로에 목을 베고 잠을 청했다. 


그러나 1901년 8월의 어느 날, 어떤 문제였는지 이날 막차의 출발 시간은 지연됐다. 이를 알지 못했던 조선인 몇 명은 평소 그랬던 것처럼 철로에 목을 베고 잠을 청했다. 


1935년 8월 5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삽화


깊은 밤, 지연된 열차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달렸고 잠에 들어 이를 미처 피하지 못한 조선인들은 그대로 목이 잘려 목숨을 잃고 말았다. 


혹자는 이를 '전기단두대'라고 표현했다.


전차의 위험성에 대한 무지에서 발생한 사고였으나 당시의 사람들은 분노에 가득 차 떼로 몰려들어 전차를 부쉈다. 


그때를 살던 사람들에게 철도는 나약한 나라 조선을 침범한 수탈의 수단이자 사람을 죽인 살인 기계처럼 느껴졌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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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동이 일어나자 당시 전차를 운행하던 한성전기회사는 한국인들의 요구에 굴복해 야간열차는 반드시 일정에 따라 운행하게 했으며 지연될 경우 다음 날 아침으로 운행을 연기하기로 했다.


이후 한국인들은 계속해서 차디찬 철로를 베개 삼아 다시 밤공기를 즐길 수 있었다고 한다. 


근대 문명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철도와 한국의 만남은 이처럼 평탄치는 않았던 듯하다. 이어진 역사에서도 철도는 일본의 식민지배 수탈의 수단으로 민중의 미움을 샀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낸 후에야 철도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철도는 그 기다란 선로처럼 우리의 근대사를 관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