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6일(월)

가난한 20대 여성이 직접 경험한 '흙수저 집안에서 애 낳으면 생기는 일'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인사이트] 김소영 기자 = "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생존자'입니다"


지난 13일 온라인 커뮤니티 네이트 판에 올라온 '요즘 흙수저 집안에서 애 낳으면 생기는 일'이라는 제목의 글이 화제의 중심에 섰다.


20대 초반이라 밝힌 A씨는 요즘 가난한 집안에서 애 낳는 문제로 말이 많아 자신의 경험담을 써본다며 자신을 '가난한 집 생존자'라고 일컬었다.


실제 동네에 생활고를 비관하다 일가족이 동반 자살한 사례가 있었다는 그는, 가난한 동네에서 나고 자랐는데 부모님이 싸우는 문제의 80%는 '돈' 때문이라고 전했다.


A씨는 "자식들은 그거 보면서 달달 떨고, 같은 동네 친구들은 자기 방 가지기도 힘든 애부터 용돈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애까지 각양각색으로 불행 서사를 깔고 (인생을) 시작한다"라며 "어쩌다 학군 괜찮은 부촌 중학교에 걸리면 더 지옥이다. 나만 다른 세상에 사는 느낌, 나만 못 사는 느낌(을 느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그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 생각하는 부자의 기준과 중산층 아이들이 생각하는 부자의 기준이 다르다고도 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부자의 기준은 신축 아파트에 살며 학원도 갈 수 있고 달마다 5만 원 이상의 용돈을 받는 것이지만, 중산층 아이들에겐 그게 당연했다.


중산층 학생들에게 부자는 유학 가고 대치동 학원에 다니면서 강남에 거주하는 이들이었다. 그는 '쟤네한테 나는 인간으로 보이긴 할까?'하는 생각도 했을 만큼 큰 괴리감을 느꼈었다.


A씨가 잘 사는 중산층 친구의 집에 갔을 때 가장 다르다고 느끼는 것은 바로 '간식'이었다. 그 친구들 집에 가면 자신은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제철 과일을 갈아서도 먹고, 수제 쿠키나 마카롱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어줬다.


A씨의 집에선 과자 한 봉지를 먹어도 서로 더 먹겠다고 싸우는 게 일이었는데 말이다.


사실 먹고사는 문제는 숨기면 그만이었다.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새 학기 친구끼리 학원에서 얼굴을 트고 서로 친해지는 사이, 학원에 가지 못한 A씨는 대화에 소외감을 느껴야만 했다.


이런 감정을 부모님에게 설명해봐도 알 턱이 없었다. 그는 "흙수저 부모님은 학원이 공부하는 곳이라고만 생각해 인강으로만 때우라고 하는데, 학원은 10대 애들끼리 친목도 하는 곳이란 걸 이해 못 한다. 사실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는 걸로 보인다. 본인 먹고사는 일도 팍팍하다고 느껴서 애들 문제는 작게만 보니까 공감해 주길 귀찮아한다고 느꼈다"라고 전했다.


부모님들은 동네 주민과 술도 마시고 어울리는 등, 자신들 친목은 중요시하면서도 정작 자식들의 사회적 관계는 중요시하지 않았다.


부모 자신들은 사회생활한다며 백화점에서 옷을 사면서 아이들 옷은 보세로만 입히면 된다고 생각했다. 교복 위에 입는 겉옷만이라도 브랜드 있는 옷으로 사달라고 하면 혼낼 뿐이었다.


A씨는 "흙수저 동네도 입는 걸로 파벌이 나뉜다"라며 "못 사는 동네여도 부모님이 그나마 투자해 주는 친구는 반에서 친구들과 위화감 없이 어울린다. 용돈을 받고 겉옷은 유행에 맞춰 입으니 말하지 않으면 흙수저인 게 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라며 "부모님이 투자도 안 해주는 친구는 반에서 찐따와 찌질이 취급을 받는다. 비슷한 무리와 어울려 다니며 뒷담화를 당하기 일쑤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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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을 경험할 때도 흙수저 가정과 일반 가정의 차이는 드러났다. A씨는 어쩌다 조금 잘사는 동네로 중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매우 충격을 받은 일화가 있다며 소개했다.


부촌 동네에서 어울려 다니는 아이들끼리 분열이 일어나 한 친구가 떨어져 나간 사건이 있었다.


그때 그 친구는 한 달쯤 뒤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소식을 들은 부모가 아예 다른 학교로 보내준 것이었다. 그때 A씨는 자식이 학교 친구 문제로 스트레스 받을 때 이사를 보내줄 수 있는 부모님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초등학교때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A씨는 당시 부모님의 훈계만 듣고 '은따'를 당하며 알아서 문제를 해결해야 했었기에 충격이 더욱 컸다.


이외에도 차이점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았다.


아빠 월급날이나 친척이 오는 날에만 외식을 하는 줄 알았지만 흙수저가 아닌 집은 외식은 물론이고, 가족단위로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게 생각보다 흔했다.


부모님이 너무 싫어 집 나가고 싶다는 애들이 꼭 있는 흙수저 동네와 달리, 중산층 아이들은 적어도 부모님에게 잘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A씨는 "17살 때부터 공장에 들어가야 하는 극빈층은 많이 줄었지만, 집 하나 없이 전세나 월세로 떠도는 가정은 여전히 있기 마련이고, 그렇게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평균 소득이 오른 세상에서 부모의 무능함을 제대로 체감하게 된다"라고 고백했다.


게다가 부모님 밑에서 배울 점도 없기 때문에 낳아준 것을 은혜가 아닌 징벌이라 여긴다고.


A씨는 "지금보다 집값이 싸고 취업 기회도 많았던 시대에 자식이 자라는 20년간 자기 명의로 된 집 한 채 마련해 본 경험이 없고 기초생활수급자 생활을 못 면하고 있다면, 그 시대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밀려난 도태된 인간이란 뜻"이라며 "그런 부모님은 경험 자본, 문화 자본 등이 빈약해 제대로 (교육을) 물려주질 못한다"라고 설명했다.


중산층 아이들이 부모에게 배우는 금전 감각이나 문화 자본은 그 아이들을 더 잘 살게 해줄 것이고, 그렇게 일군 화목한 가정을 통해 아이들이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점이 부러웠다는 A씨.


주식 보는 법, 신문에 정치면이나 사회면 기사를 보고 해석하는 법, 읽어두면 좋을 교양서, 레스토랑 식기 쓰는 법까지. A씨 기준에서 '평범한 집'인 곳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그는 전혀 누리지 못했다.


이는 결국 사회생활에서의 능숙함으로 이어져 더욱 안타깝다고도 전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A씨는 "(흙수저 집안 아이들은) 결국 돈 벌 때가 되면 집을 탈출할 기회만 엿보는 경우가 다수"라며,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가치관에 동의하지 못한다고 단언했다.


가난한 경험이 있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말에는 동의해도 가난한 상태에서는 절대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SNS가 활성화된 시대라 가난이 현재진행형인 아이들은 약점이 바로 드러나기 좋아 더 괴로울 것이란 걱정도 했다.


흙수저 동네에서 자란 친구들은 하나같이 '비혼'으로 살고 싶다고 한다며, 취직하자마자 부모와 연락을 끊는 흙수저 아이들을 이해한다고도 말했다.


일부 부모에게는, 요즘 같은 시대에 태어나 괴로운 흙수저에겐 괜히 낳아놔 괴롭게 해 미안하다고 인정해 주고 노후대비로 자식 이용하지 말라는 일침도 가했다.


이재명 페이스북


지금도 국가장학금과 학자금 대출을 풀로 당겨 부모님께 드리고 자신은 빚더미에서 시작하는 흙수저 선배들을 보면 마냥 안쓰럽다는 A씨. 그는 이런 식으로 흙수저의 생이 대물림 되는 것이라며 글을 끝마쳤다.


해당 글에 어려운 유년기를 보냈던 많은 이들이 공감을 보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14일 "읽다 보면 찢어지게 가난했던 제 얘기 같으면서도, 또 요즘 시대의 가난의 결이란 더 극명하고 촘촘하게 청년들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있구나 절감합니다"라며 해당 글을 공유하기도 했다.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 또 실제 가난해도 A씨와 같은 경험 없이 행복하게 사는 이들도 있으니 이를 일반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A씨의 절절했던 유년기를 담은 글에 많은 이들이 공감을 표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가난이 대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창문으로 도망친다'는 말이 있다.


요즘처럼 자본이 곧 기회가 된 세상에서, 가난이 주는 설움이 이전보다 더 큰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한편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제안하는 한국 중산층 소득(2018년 기준)은 월 114만8500~344만5500원이지만, 실제 국민들은 월 소득 5~600만원미만(30.5%)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다.(매경LUXMEN이 잡코리아와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


그만큼 한국인들이 체감하는 중산층의 문턱은 높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흙수저'와 '금수저'의 경계도 저마다 다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