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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조재현이 말하는 정치인 ‘정도전’

드라마 ‘정도전’이 종영 3회를 앞두고 있다. 정도전 역할로 분한 배우 조재현이 정치인이자 선구자였던 정도전에 대해 입을 열었다.


ⓒ연합뉴스

결말은 익히 잘 알고 있다. 정도전은 이방원의 손에 죽는다. 그런데도 시청자는 그 바뀔 수 없는 결말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KBS 1TV 대하사극 '정도전'의 힘이다. 종영까지 이제 단 3회 남았다.

정도전을 연기하는 조재현(49)을 최근 인터뷰했다.

"결과적으로 정도전은 방심한 거에요. 이방원이 자신을 향해 칼을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아버지(이성계)의 존재가 너무 크니까 감히 게임이 되지 않는 상대로 여긴 겁니다. 그런 이방원한테 당했으니 방심한 거죠."

드라마 '정도전'은 꺼져가던 정통사극의 불씨를 다시 살려내며 안방극장에 반가운 기운을 불어넣은 수작이다. 예상치 못했던 '이인임 신드롬'에서 시작해 북방 사투리를 구사하는 구수한 이성계와 사모의 정이 뚝뚝 묻어나는 정몽주, 늑대와 같은 이방원을 잇달아 '스타덤'에 올리더니 이제 주인공 정도전의 최후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방영도중 드라마에서 정작 정도전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지적은 오히려 반대로 조재현이라는 베테랑 배우가 정도전을 안정적으로 연기 해줬기 때문에 다른 인물들이 살 수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논란이 있었던 것을 왜 모르겠냐"며 웃은 조재현은 "하지만 우리 드라마 자체가 잘 만들어진 것으로 만족한다. 조미료를 안 넣어도 맛이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고무적이고 박수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극 중 정도전은 많은 어록을 남겼지만 그 중에서도 최근 회자가 되는 말 중 하나는 "임금의 소임은 듣는 것, 참는 것, 품는 것입니다."

이성계가 왕이 하는 일에 사사건건 반대하는 신하들에 대해 불평하자 정도전은 "신하의 소임은 간쟁하는 것입니다. 시끄러운 것이 당연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정치는 천하가 모두 간쟁에 나서는 것입니다. 공론은 나라의 원기와도 같은 것이니 나랏일로 궐 안팎이 떠들썩한 것은 그만큼 이 나라가 건강하다는 증좌입니다"라며 이성계를 차분하게 설득한다.

드라마 전개과정에서 정도전이 보여준 모습은 대부분 이렇듯 신실하고 어진 충신의 모습이었다.

조재현은 정도전에 대해 "절대로 사리사욕은 없었던 인물"이라고 단언했다.

"정도전은 폭군과 선군의 출현에 따라 나라가 어찌 달라지는지를 보면서 정치는 그 시절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겁니다. 절대로 왕이 혼자서 할 수 없고 똑똑한 재상들이 정치를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한다고 여긴거죠. 그것을 이방원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고요. 정도전은 개인적으로 권력에 욕심이 있었던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조선의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꿈이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결국 그 때문에 조선 개국 6년차에 이방원의 손에 죽게 되죠."


ⓒ연합뉴스

하지만 정도전에게 경계할 대상은 이방원만이 아니었다.

조선 개국과 함께 정도전의 힘이 나날이 커지자 정도전의 아내조차 그에게 "사람들이 임금은 허수아비고 대감이 임금이라고 한다. 이인임이 살아 돌아왔다고도 한다"며 독설을 퍼부었다. 이에 정도전이 "집안 민심을 보니 저자 민심은 보나마나겠구만"이라며 씁쓸해하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개혁에 드라이브를 거는 것은 고금을 막론하고 어려운 것이며, 사리사욕 없는 마음도 남의 눈에는 다르게 비칠 수 있음을 지적한 대목이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다. 정도전은 명나라에서도 살생부에 올랐다.

조재현은 "정도전의 최종 목표는 요동정벌이었다. 언제까지 조선이 대국의 신하 노릇을 해야 하냐는 회의가 든 것"이라며 "그러니 주원장의 눈 밖에 날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런저런 이유들이 모여 그가 결국 죽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조재현은 드라마 '정도전' 열풍에 대해 "시청률 이상의 뜨거운 관심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문경 드라마 세트장에 40~50대들만 모여들었어요. 주말이면 '정도전'이 시작하는 시간에 맞춰 집으로 뛰어들어가던 중년의 아저씨들만 우리 촬영팀에 관심을 가졌죠.(웃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20대, 10대까지도 관심을 갖고 세트장에 오더라고요. 특히 여성들의 관심이 처음에는 차가웠는데 지금은 확연하게 달라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는 드라마에서 그리는 여말선초의 모습이 지금의 시대상과 비슷한 점도 드라마 인기의 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요즘 1970~80년대보다 더 살기 힘든 사람이 많아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잘살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삶의 질이 떨어졌다는 얘기죠. 우리에게도 지금 변화와 개혁이 필요한 게 아니냐는 생각들을 하게 된 겁니다. 세월호 참사도 그렇고, 잘못된 시스템을 정비하고 부패를 뿌리 뽑을 수 있는 누군가가 나와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거죠."

조재현은 "대중문화는 다양해야하는데 최근 드라마를 보면 특히 지상파 드라마에는 다양함이 부족했다"며 "드라마 '정도전'은 다양성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매우 건강한 작품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그는 "온가족이 함께 보면서 국가의식과 철학을 논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어떤 미래를 그려나가야 하는지 서로 생각해보게 했다"면서 "드라마 이상의 역할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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