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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 의심될 정도로 살인·강간 일삼은 역사 속 왕자 4명

왕의 피를 이어받았음에도 무고한 사람들을 마구 죽이고 강간해 '역사의 심판'을 받은 왕자들이 있다.

인사이트영화 '군도'


[인사이트] 이별님 기자 = 고결한 왕의 피를 이어받았음에도 사람들을 마구 죽이고 강간해 '범죄자'란 오명을 쓴 왕자들이 있다.


장차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사를 돌봐야 할 왕자들이 도리어 자신들이 다스려야 할 백성들을 죽이고 겁간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반사회성 인격장애 즉 '사이코패스'로 의심받고 있다.


왕의 아들이라는 초특급 '금수저' 신분 덕분에 처벌을 모면했을 법도 하지만, 대부분은 불행한 최후를 맞이했다.


또 이들이 저지른 만행들은 역사에 고스란히 기록됐다.


신분제의 든든한 방패 속에서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다가 뒤늦게 '역사의 심판'을 받은 왕자 중에는 누가 있는지 아래의 목록을 통해 확인해보도록 하자.


1. 사도세자

인사이트영화 '사도'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는 임오화변(壬午禍變)으로 우리들에게 친숙한 역사적 인물이다.


아버지에 의해 귀주에 갇혀죽었다는 비극적인 역사적 사실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도세자가 저지른 범죄는 비교적 알려지지 않았다.


사도세자의 살인 행각은 조선왕조실록과 아내 혜경궁 홍씨가 저술한 '한중록'에도 자세히 기록돼 있다.


기록에 따르면 사도세자는 무고한 나인과 내관 등을 잔혹하게 고문하는 거나 목을 베는 등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


심지어 내관의 머리를 잘라 궁내를 돌아다녔고, 혜경궁 홍씨에게 직접 보여줬다는 기록도 있다.


숫자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족히 100명은 된다고 알려졌다. 그중에는 자신의 후궁도 포함돼 있다.


다만 사도세자가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서울아산병원 정신의학과 교수팀은 2014년 사도세자의 증상을 현대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분석했는데, '조울증'이 의심된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아버지 영조로부터 받은 중압감 때문에 사도세자가 정신질환을 얻게 됐다는 분석이다.


2. 임해군

인사이트MBC '불의 여신 정이'


조선 제14대 임금 선조의 아들 임해군은 비록 서자이지만 서열이 가장 높아 세자의 자리에 올라야 했다.


하지만 포악한 성격과 그가 저지른 악행들 때문에 자신의 아우 광해군에게 세자 자리를 빼앗겼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임해군은 어린 시절부터 민간인을 함부로 구타하고 살해했으며 토지와 노비들을 강탈했다.


임진왜란 당시 임해군은 왜장 가토 기요마사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풀려났었는데, 덕분에 본래의 포악한 성품이 배가 됐다고 전해진다.


자유의 몸이 된 임해군은 술과 여색을 즐기며 방탕한 생활을 하거나 살인, 강간 등을 저지르는 등 소싯적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또 선조와 인목대비의 혼인이 진행되던 1602년에는 임진왜란 당시 공을 세웠던 기술자 소충한을 몽둥이로 때려죽이기도 했다.


임해군의 폭주는 그가 동생 광해군에 의해 사사되면서 비로소 멈추게 됐다. 


1608년 광해군 즉위 1년에 일부 대신들이 임해군을 왕으로 즉위시킬 것을 주장하자, 이를 불안해하던 광해군이 그를 사형에 처했다.


3. 순화군

인사이트KBS1 '징비록'


우리의 역사에서 선조만큼 자식 복이 없는 사람이 또 있을까. 선조의 장남은 앞서 설명한 '임해군'이고, 그의 뒤를 이은 아들 광해군은 반정으로 퇴위 됐다. 


또 그가 가장 사랑하던 영창대군은 어린 나이에 의문의 사고로 사망했다. 


선조의 여섯 번째 서자 순화군은 불행하게도 임해군 저리 가라 하는 '망나니'였다.


순화군 역시 임해군과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부터 포악한 성품으로 유명했다.


어린 시절 순화군은 새나 작은 짐승을 잡아 가지고 논 다음 반드시 잔인하게 살해했다.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임해군과 함께 포로로 잡혔다가 풀려나기도 했다.


이후 순화군은 힘없는 평민이나 노비들을 마구 죽였는데, 해마다 억울한 희생자가 10여 명에 달했다.


계속된 순화군에 만행에 선조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다만 '아들 사랑'이 끔찍했던 선조는 순화군을 사형 대신 유배형에 처했다.


하지만 순화군은 유배지에서도 죄 없는 평민의 이를 부러뜨리는 등 관원과 백성들에게 행패를 부렸다. 


결국 선조는 어쩔 수 없이 순화군을 가택연금에 처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순화군은 중풍에 걸려 사망했다.


4. 충혜왕

인사이트SBS '신의'


왕의 아들 신분으로 패악질을 일삼던 왕자들은 다행히 대부분 왕업을 잇지 못했다.


한국사 최악의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도 세자 시절부터 즉위 초까지는 막장 행각을 벌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충혜왕의 경우는 다르다. 왕자 시절부터 포악했던 그는 불행하게도 아버지 충숙왕에 이어 임금 자리에 올랐다.


원 간섭기에 태어난 충혜왕은 1328년 열 네 살이란 어린 나이에 세자 신분으로 원나라에 갔다가 1330년 충숙왕의 명을 받고 귀국해 즉위했다.


고려 제28대 왕으로 즉위한 충혜왕은 주색에 빠지기 일쑤였고, 사냥 등 쓸데없는 일로 정사를 등한시했다.


이를 보다 못한 원나라가 충숙왕을 복위시켰고, 충혜왕은 아버지가 사망하는 날까지 세자 신분으로 지냈다.


세자 시절 충혜왕은 지붕 위에 새를 잡는다고 절에 불을 지른다거나 불량배들과 어울려 여자를 겁탈했다고 전해진다.


충숙왕이 죽고 복위한 다음에는 아버지의 첩인 경화 공주를 겁간하고, 외숙모도 간음하는 등 패륜을 저지르기도 했다.


다만 충혜왕은 무고한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살인마는 아니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수많은 여성들을 강간하며 범죄를 일삼던 충혜왕은 결국 원나라로 압송됐고, 유배지로 가던 중 30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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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님 기자 byul@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