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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완납해 '철강업계' 오뚜기라 불리는 쇠파이프 국내 1위 세아그룹

반 세기 동안 철강제품에만 집중한 세아그룹의 빛나는 '뚝심'은 업계에 귀감이 되고 있다.

인사이트(왼쪽부터) 세아그룹 창업주 고(故) 이종덕 명예회장, 이 명예회장 장남 고(故) 이운형 세아그룹 회장, 이 회장 장남 이태성 세아그룹 부사장 / 사진 제공 = 세아그룹


58년간 철강제품에만 집중한 세아그룹의 뚝심한 우물 판 덕분에 강관·특수강 시장서 1위 차지


[인사이트] 윤혜경 기자 = '우물을 파도 한 우물만 파라'는 선현들의 가르침을 그대로 이어나가는 기업이 있다.


이태성 부사장의 성실한 상속세 납세로 국민들 사이서 '착한 기업'으로 떠오른 세아그룹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세아그룹의 주력사업은 철강 및 특수강 사업이다. 두 사업은 각각 세아베스틸과 세아제강에서 도맡고 있다.


한 우물만 판 '뚝심' 덕분인지 세아그룹은 국내 강관(철로 만든 파이프) 및 특수강 시장 1위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며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다.


인사이트부산철관공업 / 사진 제공 = 세아그룹 


해동철강상사로 철강업에 처음 손댄 창업주부산으로 내려가 '부산철관공업' 세우고 강관에 집중


국내에서 강관 및 특수강 시장 점유율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철강 제조 전문 대기업인 세아그룹의 시초는 194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아그룹의 창업주인 고(故) 이종덕 명예회장은 1945년 서울 을지로에 '해동공업사'를 설립하며 사업의 첫 닻을 올렸다. 광복과 함께 사업을 시작한 것.


호기롭게 첫 삽을 떴으나 해동공업사는 얼마 가지 않아 부침을 겪고 만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기 때문. 회사가 휘청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한국전쟁. 그런 한국전쟁이 1953년 멈췄다. 3년 1개월에 걸쳐 많은 사상자를 낸 한국전쟁이 휴전된 것이다.


인사이트사진 제공 = 세아그룹 


휴전이 되면서 이 회장은 철강 판매업체인 '해동철강상사'를 세우면서 철강업에 처음으로 손을 대기 시작했다.


사업은 나날이 승승장구했다. 자본금도 꽤 모였다. 이때 이 회장은 철강에 주목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듯하다.


생각은 바로 실천으로 옮겨졌다. 이 회장은 부산 감만동으로 내려가 (주)부산철관공업(세아제강의 모태)을 설립, 본격적으로 강관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인사이트세아그룹 창업주 고(故) 이종덕 명예회장 / 사진 제공 = 세아그룹


출범 7년 만에 국내 최초로 강관 수출 달성 

출범 10년 만에 자산 규모 300배 성장 쾌거


끊임없이 품질 개선을 하며 강관에 집중한 덕분일까. 부산철관공업은 1967년 국내 업체 최초로 강관 수출이란 쾌거를 달성했다. 출범 7년 만에 이룬 놀라운 성과인 것이다.


국내 실적도 호조였다. 특히 해당 시기가 국가 경제 개발로 인해 강관 내수 수요가 크게 늘었던 터라 실적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부산철관공업은 국내·외에서 호황을 맞으며 출범 10년 만에 자산 규모가 300배 성장하는 성과를 달성했다.


인사이트부산파이프 포항 공장 건설 현장 당시 모습 / 사진 제공 = 세아그룹


이 기세에 힘입어 이 회장은 1969년 기업공개를 한 뒤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했다.


사세 확장은 계속됐다. 본사를 서울로 이전한 이 회장은 1975년 사명을 (주)부산파이프로 변경하고 고급 강관 제조기술 개발 및 생산에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리고 1978년 포항 제1공장, 1980년 포항 제2공장, 1983년 포항 제3공장이 준공됐다. 그룹의 중요한 성장의 도약대가 완성된 것이다.


인사이트고(故) 이운형 대표이사 취임 당시 모습 / 사진 제공 = 세아그룹 


2세 경영 시작…세계화 도약 나서다 강관업계 최초로 기술 연구소 출범 


기틀이 마련된 이 시기부터 이 회장의 장남인 고(故) 이운형 사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다. 이 사장은 1974년 이사로 부산파이프에 입사한 뒤 부사장을 거쳐 1980년 사장에 취임했다.


이 회장에게 바통을 이어받은 이 사장은 해외 업체들과 활발히 제휴하며 세계화 도약에 나섰다.


인사이트사우디아라비아 부두에 산을 이룬 부산파이프 강관 / 사진 제공 = 세아그룹


부산번디(세아FS 전신)을 설립해 튜브시장에 진출했고, 한국알로이드(세아에삽 전신)를 설립해 용접재료 및 장비 시장까지 손을 뻗쳤다.


그의 드라이브는 멈추지 않았다. 창원강업(세아특수강 전신)을 인수, 자동차 부품 및 산업용 기초소재 시장에도 진출했으며, 1987년에는 강관업계 최초로 기술 연구소를 출범했다.


인사이트 / 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


그룹체제 전환…수십여 개 계열사 거느려몸집 커졌지만 '철강'이란 한 우물만 파


이 사장은 1995년 '세아(세상을 아름답게)'로 사명을 바꾸고 그룹체제로 전환한다.


2001년에는 세아홀딩스 설립 및 거래소 상장됐고, 2003년 기아특수강(세아베스틸)을 인수했다. 부산철관공업을 시작한 사업이 어느덧 수십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게 된 것.


몸집은 커졌지만 철강이란 한 우물만 팠다. 이러한 덕분인지 세아제강은 2008년 강관업계 최초로 3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입지는 더욱 공고해졌다. 세아제강은 국내 1위 강관 제조기업으로 우뚝 섰고, 세아베스틸 또한 특수강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 우물만 판 결과인 셈이다.


반 세기 동안 철강제품에만 집중한 세아그룹의 빛나는 '뚝심'은 업계에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