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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부터 모든게 '엄친아'였던 조선의 마지막 왕자

고종의 손자이자 순종의 조카로 태어난 '이우왕자'로 수려한 외모 뿐만 아니라 늘 조선에 대한 독립을 꿈꾸며 일본에 적대적이었다.

<1937년 당시 이우왕자 모습> 

 

[인사이트] 구은영 기자 = 조선시대에도 외모에서부터 성격과 패션, 영민함까지 모든게 완벽했던 '엄친아' 왕자가 있었다. 

 

그는 바로 고종의 손자이자 순종의 조카로 태어난 '이우왕자'로 수려한 외모 뿐만 아니라 늘 조선에 대한 독립을 꿈꾸며 일본에 적대적이었다.

 

당시 이우왕자는 잘생긴 외모 때문에 여인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침착하고 영리한 성격에 일본어도 능숙하며 노래까지 잘 불러 외국 공신들도 인정할 정도였다.

 

경성유치원의 보모 교구치 사다코는 "어떻게 영민하신지 벌써 일본어도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의 반 정도는 아시고 창가도 매우 잘하신다"며 "재주와 위엄, 풍채 모두 나무랄 수 없는 훌륭한 귀공자이시다"고 평했다.

 


 

또한 조선은 항상 독립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본인들의 눈에 초라하게 비춰지는 것이 싫어 제복도 재단사를 불러 차려입었다고 한다.

 

이렇게 완벽했던 이우왕자는 평생동안 일본의 볼모로 살아가며 조국의 귀환을 바랬던 비운의 왕자이기도 하다.

 

그는 일제의 감시를 받으며 어린시절을 보냈고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해 일본군 포병장교로 임명 받았다.

 

이는 일제가 조선 황족을 일본의 군인으로 임명해 일제 치하의 조선을 정당화하는 홍보의 도구로 활용한 것이었다.

 

<1935년 이우왕자와 박찬주 결혼 당시 모습>

 

또한 조선총독부는 조선 황족의 결혼을 통제하며 일본인과 정략 결혼을 강요 했으나 이우왕자는 조선 여성 박찬주와 결혼해 조선 황족의 자존심을 지키려 했다.

 

1945년 7월 이우왕자는 전쟁을 위해 일본의 히로시마로 전출되었고 그 해 8월 일본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비운의 죽음을 맞게 된다.

 

조선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이우왕자는 죽음 이후에도 일본의 전범들이 묻힌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그의 혼(魂)조차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구은영 기자 eunyoungk@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