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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 속 전두광의 '쿠데타'가 오늘날에는 불가능한 5가지 이유

최근 영화 서울의 봄이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현직 사단장이 주장했던 현재 쿠데타가 불가능한 이유가 재조명되고 있다.

'서울의 봄' 특별 포스터'서울의 봄' 특별 포스터


영화 '서울의봄'이 누적 관객 수 755만 명(12월 14일 기준)으로 빠른 흥행 속도를 보여주고 있다. 1,000만 관객 돌파도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발생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쿠데타(coup d’etat)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관객들은 막을 수 있었던 쿠데타가 많은 결정권자의 무능력 때문에 성공한 것을 두고 많은 생각에 잠기고 있다.


'쿠데타'는 '국가에 대한 일격'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12·12 사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과 함께 대표적인 군사 반란으로 꼽힌다.


다만 전두환 신군부와 박정희 군부가 일으킨 쿠데타는 차이가 있다. 


영화 '서울의 봄'영화 '서울의 봄'


박정희 전 대통령은 5·16 당시 3,600명의 권력의 핵심을 빠르게 장악했다. 중간에 쿠데타 계획이 밖으로 흘러 나갔지만 사망자는 없었다. 빠르게 정권을 장악하고 혼란한 국정을 수습해 갔다. 


그러나 12·12는 군부를 장악했을 뿐, 당시 국민들이나 야당의 분위기 때문에 눈치를 보느라 정변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이러한 차이가 12·12를 군사 정변으로, 5·16을 군사 반란으로 보는 이유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직접 선거라는 과정을 통해서 대권을 잡았지만, 전두환은 체육관 선거로 당선돼 '정권 찬탈'이란 오명을 벗기도 어렵다.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 12·12는 5·18 민주화운동의 결정적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인사이트영화 '서울의 봄'


공통점이 있다면 혼란한 국정 상황 속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5·16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한 직후 찾아온 사회 혼란 속에서, 12·12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 국면 속에서 발생했다. 


그렇다면 국정이 혼란한 상황이 다시 찾아온다면 쿠데타는 다시 발생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지난 2004년 월간중앙 9월호에 실린 '참여정부의 군심(軍心)'이라는 특집 기사 가운데 '현역 장군이 말하는 '쿠데타가 불가능한 5가지 이유'가 눈길을 끌고 있다. 


잡지에 따르면 당시 현역 사단장으로 복무 중이던 K소장은 한국에서 쿠데타가 불가능한 이유로 5가지를 들었다.


1. "휴대전화 때문에 보안 유지가 불가능하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YouTube '국방TV'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YouTube '국방TV'


K소장은 한국의 휴대전화 보급과 인터넷으로 인해 쿠데타가 불가능할 것으로 봤다. 당장 쿠데타를 모의하는 과정에서부터 보안 유지가 어렵다는 것이다. 


설사 모의에 성공했더라도 거사가 안 된다고 봤다. 특정 부대, 특정 집단의 일거수일투족이 사람들에 의해 순식간에 세상에 알려지기 때문이다. 


최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보더라도 전쟁의 실시간 상황이 SNS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을 통해 공유되고 있다.


또 군 장병에게도 휴대전화 사용이 허용돼 쿠데타의 정보가 새어나갈 가능성은 과거보다 더욱 커졌다. 


2. "군사를 집결시키고 장비를 앞세워 중앙무대로 치고 들어오려고 해도 교통체증 때문에 이동이 어렵다"


뉴스1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뉴스1


두 번째 이유는 교통 체증이다. K소장은 "요행히 군사를 집결시키고 장비를 앞세워 중앙무대로 치고 들어오려고 해도 교통체증 때문에 (예정된 시간에) 이동이 어렵다"고 봤다. 


과거에는 통행금지가 있었다. 1961년부터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된 1982년까지 통금 시간은 0시부터 4시까지였다. 


특히 부마 민주 항쟁 당시와 박정희 전 대통령 타계로 인한 계엄령이 발동될 때는 밤 10시부터 다음날 4시까지 통금시간이 늘어났다.


통금시간 때를 이용하면 병력과 장비의 신속한 이동이 가능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중앙 당국의 통제가 없는 한 수도권 교통 체증을 극복하고 이동하기는 쉽지 않다. 


3. "만난을 무릅쓰고 중앙무대에 진출했다고 해도 국민을 설득할 방도가 없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영화 '택시운전사'


세 번째 이유는 언론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K소장은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병력과 장비를 중앙무대에 진출시켰다 해도 국민을 설득할 방도가 없다"고 했다. 


그는 "옛날처럼 몇 안 되는 신문사와 방송사를 접수하는 것은 국민의 동의를 구할 수 없는 것이다. 국민은 휴대전화와 인터넷으로 서로 의견과 정보를 주고받으며 쿠데타군을 응징할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쿠데타에 있어 언론 장악은 주요 과정 중 하나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정을 실시한 직후 언론 검열을 실시했고, 공보부를 신설해 언론통제를 강화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역시 1980년 11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통해 언론통폐합 정책을 펼쳤다. 


4. "더이상 군이 한국 사회 최고 엘리트 집단이 아니다"


인사이트영화 '서울의 봄'


K소장은 사회 여러 분야의 발전에 따른 군의 상대적 낙후성을 네 번째 이유로 들었다. 


그는 "군사 쿠데타는 다른 사회 부문보다 군이 가장 앞서 있는 곳에서나 가능하다. 그래야 군이 명분과 힘을 가지고 압도하면서 봉기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미 오래전부터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군 이외의 부문들이 무섭게 앞서 나가 있다"고 했다. 


5·16 당시 사회 전반의 발전 정도가 낮았기 때문에 군 장교는 최고 엘리트 그룹이자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집단 중 하나였다. 5·16 이후에는 '육사=출세 가도'라는 공식이 생겨나기도 했다. 


5. "앞의 4가지 사실을 군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인사이트영화 '서울의 봄'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이유로 K소장은 "너무도 명백한 앞의 4가지 사실을, 누구보다 군이 먼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쿠데타는 더 이상 없다"고 주장했다.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전광석화처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조직이었던 '하나회'를 척결해 나갔다. 하나회가 척결된 이후 쿠데타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다.


이후에도 한국 사회는 더 촘촘해지고 개방되어 무모한 쿠데타가 모의 되거나 실행되기 어려운 환경이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인식'이다. 역사적 흐름을 통해 우리 국민들은 민주주의적이지 않은 방법을 동원해 권력을 찬탈하려고 하는 세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하고 있다. 더 이상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쿠데타는 성공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