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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 에어조던 사려 3박4일 불사 “우리는 캠핑족”

원하는 상품을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며칠이고 노숙도 불사하는 ‘캠핑족’ 문화가 국내에서도 자리를 잡고 있다.


 

"완전 소중한 나의 에어맥스"

 

6일 오전 10시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출입문 앞에는 평일 오전이었지만 20∼30대 남녀 100여명이 연방 손부채 질을 하며 줄지어 서 있었다.

 

이들이 기다린 것은 '나이키 에어맥스95'. 1995년 선풍적인 인기를 끈 러닝화다.

 

발매 20주년 기념으로 당시 모양 그대로 켤레 당 18만9천원에 한정 수량을 판매하던 참이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폭염 속에서도 줄 선두에 있는 이들은 전날부터 노숙을 하며 개장을 기다렸다. 이를 그들의 용어로 '캠핑'(Camping)이라고 한다.

 

송모(31)씨는 "어젯밤 11시에 와서 줄을 섰다"며 "미리 와있지 않으면 웃돈을 주고 사야 하거나 아예 구할 수 없어 직장에는 핑계를 대고 왔다"고 말했다.

 

한 사람당 한 켤레만 살 수 있는 이 상품은 매장 문을 연 지 2시간도 되지 않아 '완판'됐다. 전국 나이키 매장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연출됐다. 

 

◇ 미국서 시작된 사회현상, 국내서도 자리잡아 

 

원하는 상품을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며칠이고 노숙도 불사하는 캠핑은 미국에서 처음 나타났다. 

 

'농구황제' 마이클 조든이 미국프로농구(NBA)에서 활동하던 1990년대에 발매된 '에어 조던' 시리즈가 2000년대 재발매되고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부터다.

 

2011년에는 시애틀의 한 쇼핑몰에서 2천여명이 구매 경쟁을 하다 난투극을 벌여 경찰이 출동하는 촌극도 빚어졌다. 

 

이런 진풍경은 국내에서도 2013년 무렵 나타났다. 신발 애호가들은 15만명이 가입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신발 발매 날짜와 수량 등의 정보를 공유한다.

 

4월에는 에어조던 시리즈 중 가장 인기가 높다고 알려진 '에어 조던 11' 발매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마니아가 나흘 전부터 캠핑하는 과열 양상까지 빚어졌다.

 

인기가 많지만 공급은 한정된 신발을 입수해 웃돈을 받고 파는 '리셀러'(Re-Seller)도 등장했다. 

 

에어맥스95가 팔린 6일 오후 한 포털 중고물품 거래카페에는 원래 가격에 최대 10만원의 웃돈을 붙여 판다는 글이 100여개 게시됐다. 

 

캠핑은 아디다스, 뉴발란스 등 다른 브랜드에서도 한정판이 발매되면 나타나는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자리매김했다. 

 

◇ 축제, 놀이…어린 시절을 추억하다 

 

캠핑은 신발 애호가들에게 '축제'로 통한다. 

 

조모(26·자영업)씨는 "신발을 사들이는 것은 어린 시절 추억을 되살리는 일"이라며 "유별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캠핑은 즐거운 축제이며 놀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요 제품이 나올 때마다 꼭 캠핑을 하고 한 제품을 실착·수집용 등으로 세 켤레를 산다.  

 

전문가들은 이를 '복고 트렌드'와 '키덜트'(Kidult) 문화로 풀이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전미영 연구교수는 "과거 출시된 제품을 재발매해 키덜트족을 노리는 전략은 최근 업계의 흐름"이라며 "업계는 다품종 소량생산, 줄세우기 전략을 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키덜트족은 20만원짜리 신발을 구하려 캠핑을 하면서 수백만원짜리 명품을 사는 것과 같은 희열을 느낀다"며 "비싼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가치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소비를 통해 개인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소비주의 사회'에서 유년기를 보낸 세대가 구매력 있는 성년이 됐을 때 일어나는 세계적인 현상이 국내에도 나타난 것"이라고 진단했다,. 

 

과거에는 외가집, 할머니 등의 개념으로 어린 시절을 추억했다면 지금은 '첫 로봇', '첫 운동화' 등 구체적인 브랜드나 제품으로 추억한다는 것이다.

 

그는 "캠핑은 비슷한 성향과 기억을 공유하는 하나의 문화로, 옳다 그르다로 가치 판단할 사안은 아니다"라며 "업체들이 과도하게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면 이 문화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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