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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갔는데 제 자리에 '하얀 국화꽃'과 '영정사진'이 놓여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던 중학교 2학년 학생은 어느날 자신의 책상 위에 올려진 영정사진과 국화꽃을 보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중학교 2학년인 A군이 눈을 뜨자마자 한 생각은 '학교에 가기 싫다'였다. 어쩌면 '무섭다'가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키가 152cm밖에 이르지 않았던 작은 체구의 A군은 2학년에 진급되면서 새로운 반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다.  


친구들은 지워지지 않는 펜으로 A군 얼굴에 낙서를 하고 모형 총기의 과녁을 그려 물체를 던져 맞추는 놀이를 했다. 


가혹한 따돌림, A군에게 학교 가는 일 그 자체로 고통이지만 부모님에게 말도 꺼내지 못하고 어김없이 학교로 향했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11월의 어느 날이었던 그때 향냄새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간 A군의 코를 찔렀다. 이어 그의 자리에 놓여 있는 영정 사진과 우유병에 담긴 하얀 국화가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 책상을 보니 "잘 가", "사라져서 잘 됐다", "그것 봐라" 등 악의로 가득 찬 쪽지가 올려져 있었다. 


그중에는 선생님들이 적어 놓은 쪽지도 보였다. 


멍하니 자신의 책상을 바라보고 있는 A군에게 한 학생이 매직을 들고 다가가 명찰을 검게 칠했다. 


이제 죽은 사람이란 뜻이었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충격에 빠진 A군은 이후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학교에 갈 때마다 항상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으나 그 누구도 심각하게 받아드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다음 해 1월 마지막 날, A군은 어머니와 함께 귀가하던 길에 '이제 다 싫다'며 울분을 토하더니 다음 날 아침 집을 나선 후 행방불명 됐다. 


2월 1일 오후 10시경 한 쇼핑몰 화장실이 문이 굳게 닫힌 채 열리지 않았다. 경비원이 이상하게 여겨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학생이 있었다.


A군이었다. 그는 "갑자기 사라져서 죄송하다. 나도 아직 죽고 싶지는 않지만, 이대로 있으면 생지옥이 된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희생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유서를 남겼다.


인사이트장례식 놀이에 쓰인 쪽지. 가운데 큰 글씨로 '잘 가'(さようなら)라고 쓰여 있다 / 아사히신문


인사이트영화 '문제 없는 우리'


이 일은 지난 1986년 일본에서 일어난 '왕따 자살 사건'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른바 '장례식 놀이'로 불리는 집단 따돌림으로 인해 한 학생이 안타까운 목숨을 잃은 사건이었다. 


충격적인 건 A군이 왕따를 당하고 있다며 직접 상담 요청을 했음에도 해당 학교 교사들이 같은 반 친구들의 집단 따돌림을 가벼운 장난 정도로 취급했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충분히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일이었으나 학교에서는 한 학생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해당 사건은 영화 '문제없는 우리'라는 영화로 제작돼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큰 파장을 일으키며 왕따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일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