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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군' 세종대왕을 만든 살인 병기 '폭군' 태종 이방원의 큰 그림

폭군으로 묘사되어 온 태종 이방원이 아들 세종대왕이 훌륭한 업적을 남길 수 있도록 큰 그림을 그렸다는 해석이 화제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SBS '육룡이 나르샤'


[인사이트] 강유정 기자 = 형제를 포함해 자신에 반대하는 세력을 모조리 죽여 '폭군'이라는 평가를 받는 조선의 3대 국왕, 태종 이방원.


하지만 일각에서는 태종을 폭군과 성군의 양면성을 지닌 왕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조선 최고의 성군이라 불리는 그의 아들 세종이 찬란한 업적을 남길 수 있도록 그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태종 이방원의 업적에 대한 해석이 올라와 눈길을 끌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SBS '육룡이 나르샤'


1367년 이성계의 다섯 번째 아들로 태어난 이방원은 1392년 건국을 반대하는 정몽주를 제거하는 등 조선을 건국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후 이방원의 피의 숙청이 시작됐다.


조선 건국에 일등 공신이던 자신이 세자에 책봉되지 못하자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이복동생인 방번과 방석을 죽이고 실권을 잡은 그는 자신의 형인 방과를 정종으로 즉위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을 정종의 양아들로 입적 시켜 세자로 책봉된 이방원은 형인 이방간이 일으킨 제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한 후 왕위에 등극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SBS '육룡이 나르샤'


이후 태종은 중앙제도와 지방 제도를 새로 정비해 고려의 잔재를 완전히 없앴다.


또 왕권 강화를 위해 사병을 혁파, 병권을 일원화하고 조선 건국 공신들은 물론 자신의 처남과 장인 등 외척을 숙청했다.


이뿐만 아니라 관리 벼슬 체계를 정리하고 백성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신문고를 만드는 등 조선의 기틀을 만드는 데 힘 썼다.


그리고 1418년 17년 만에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스스로 왕위에서 물러났다. 그는 왕위를 물려주기 전 세종의 외척을 모두 숙청하기도 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SBS '뿌리깊은 나무'


일각에서는 태종을 잔혹한 인물로 묘사하기도 하지만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해석도 많다.


그의 이런 결단력 덕분에 아들 세종대왕이 자기 뜻을 마음껏 펼치며 훌륭한 업적을 일궈낼 수도 있었다.


또한 그가 조선 왕조의 기틀을 잡은 왕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에 태종이 조선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자신의 자식을 위해 과감한 결단력으로 악역을 자처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누리꾼들은 "태종이 욕심도 많았고 잔인하기도 했지만, 세종대왕의 앞길을 열어줬다는 큰 업적을 세웠다", "왕은 힘이 있어야 하는데 처가 세력, 외가 세력에 끌려다니지 않기 위해서는 숙청이 불가피하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한편 태종이 셋째 아들인 세종에게 틈나는 대로 일렀던 것으로 알려진 말은 이 같은 주장에 신빙성을 더한다.


"이 세상 모든 악업은 내가 짊어지고 갈 터이니, 주상은 꼭 성군이 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