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좋아 수군대장까지 올랐다가 '이순신 장군' 만나 탈탈 털린 일본인

인사이트영화 '명량'


[인사이트] 김연진 기자 = 조선 선조 30년(1597년), 전남 진도 인근 해협인 울돌목에서는 유난히 우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울면서 돌아간다'라는 뜻의 울돌목은 물살이 거세 바다가 우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33척의 왜선은 13척의 조선 수군을 격파하기 위해 이곳 울돌목으로 진격했다.


손쉽게 전투에서 이길 줄 알았던 왜군. 그러나 조선에는 세계 4대 해신으로 불리는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


당시 일본의 수군대장이었던 도도 다카토라는 이순신 장군과 만나 주야장천 패전을 이어나갔다.


인사이트영화 '명량'


치욕스러운 패배를 맛본 도도는 결국 이순신 장군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사실 도도는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혹은 무능하다고 평가받지만 일본에서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수괴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마찬가지로 일반 사병에서 다이묘까지 성장했다.


그의 성공과 출세의 비결은 바로 '처세술'이었다. 쉽게 말해 줄을 잘 섰다.


인사이트연합뉴스


정세가 변하면 강한 자, 승자의 편에 서서 자신의 입지를 굳혔으며 정치적 수완이 좋아 권력의 2인자 역할을 도맡았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며 다이묘까지 성장한 도도는 일본의 수군대장이 됐고, 운이 좋아 전투를 벌일 때마다 파죽지세로 승리했다.


또한 도도는 칠천량해전에서 원균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을 완전 전멸시키면서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인사이트영화 '명량'


조선 수군의 배 13척을 상대로 맞선 도도는 완전히 박살 났고, 몸에 화살까지 맞는 부상을 당하고 퇴각했다.


'철새'라고 불리며 완벽한 처세술을 보여준 도도. 그의 운은 이순신 장군을 만나면서 막을 내렸다.


일본 사극에서도 도도와 이순신 장군의 전력 차이가 너무 커 극화시키기 어렵다는 이유로 자주 볼 수 없다고 한다.


'욱일기'는 되지만 '이순신 장군'은 안된다는 올림픽위원회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이순신 장군을 새겨넣은 헬멧이 정치적 의사가 들어가 있다고 착용을 금지시켰다.


후세에도 가장 존경받는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7가지 '리더십'419년 전인 1598년 11월 19일은 뛰어난 전술과 통찰력 있는 리더십으로 나라를 지켜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적의 총탄에 맞고 전사한 날이다.


김연진 기자 jin@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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