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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찾는 전단지 만들려고 피까지 팔았습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함께하는 장기실종자 찾기 프로젝트 세 번째 주인공은 만 17세 때 실종된 송혜희 학생이다.

사진 제공 = 송혜희 학생 가족

 

"모든 걸 다 잃어 포기하고 싶지만 포기할 수 없습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실종아동전문기관이 인사이트에 소개한 장기실종자 송혜희 학생은 1999년 2월 13일, 야간 학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사라졌다.

 

당시 송혜희 학생은 만 17세로 경기도 평택시 송탄여고 재학생이었다.

 

학생의 집은 인적이 드문 시골이었고, 저녁 9시 버스를 타면 집앞에서 내릴 수 있었지만 10시 막차는 집에서 2km 떨어진 곳에서 운행을 멈췄다.

 

그 날은 야간 학습이 늦게 끝나 10시 차를 타고 귀가했고, 버스에서 내린 뒤 송혜희 학생은 실종됐다.

 

학생의 아버지 송길용 씨는 "버스 운전자에게 물어보니 그날 처음 보는 30대 남자가 종착역에서 같이 내렸다"며 "이 동네 사람들을 다 아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더라"고 말했다.

 

집에서 딸의 귀가를 기다리던 부모님은 즉시 경찰에 신고했고 이후 수개월 간 일대를 수색했지만 송혜희 학생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당시 1,000여 마리의 가축을 기르며 사업을 하던 학생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송탄에서만 2년, 이후부터는 트럭을 제외한 전재산을 팔아 잃어버린 딸의 얼굴을 붙이고 3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학생을 찾아다녔다.

 

사진 제공 = 송혜희 학생 가족

 

일주일에 끼니 몇 번 못할 때가 허다했고 동사무소, 시청에 구걸하며 생활을 이어나갔다. 피를 팔아서 돈을 마련해 전단지와 현수막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생활하기를 십수년, 아내는 심장병을 얻고 피를 토하더니 어느 날 농약을 먹고 자살하고 말았다.

 

송길용 씨도 포기하고 싶은 마음에 수차례나 아내를 따라가려 했지만 번번이 자살에 실패했고 '아직 딸을 못 찾았는데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자살을 단념했다.

 

그렇게 다시 막노동을 하며 딸을 찾던 송길용 씨는 3년 전 전봇대에 현수막을 달다가 떨어져 허리를 크게 다치고 말았다. 

 

다행히 평택의 한 병원에서 무료로 수술을 해줬으나 최근 상태가 악화돼 재수술을 앞두고 온종일 누워있다.

 

전화 인터뷰 중에도 누워 있다던 송길용 씨는 "전국을 돌아다녔는데 섬을 못 가봤다"며 "섬 수색은 일년에 한 번 이뤄져 별로 효과는 없지만 그래도 빨리 나아서 함께 들어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송길용 씨의 관심사는 오직 '현수막과 전단지' 뿐이었다. 그는 "지금 내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너무 힘들어서 포기를 하고 싶은데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다"며 기자에게 "혹시 전단지 좀 만들어 줄 수 있냐"고 묻기도 했다.

 

한 아버지가 16년째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고 애타게 찾고 있는 딸 송혜희 학생은 현재 만 34세다.

 

사진 제공 = 송혜희 학생 가족

 

정은혜 기자 eunhye@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