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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전 오늘은 조선총독부에 폭탄 투척한 날입니다"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터뜨린 사내는 다름아닌 무장 항일운동 단체였던 '의열단' 김익상이었다.

인사이트

연합뉴스


[인사이트] 장영훈 기자 = 95년 전인 1921년 9월 12일. 무서운 굉음과 함께 조선총독부 건물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청사 2층 회계과에서 폭탄이 터진 것이다. 비서과에도 폭탄이 던져졌지만 불발이었다. 총독 사이토 마코토의 암살을 겨냥했던 작전을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이날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터뜨린 사내는 다름아닌 무장 항일운동 단체였던 '의열단' 김익상 의사였다.


1895년 경기도 고양군 용강면 공덕리에서 태어난 김익상 의사는 비행 조종사라는 꿈을 안고 중국으로 건너갔지만 중국 내전으로 학교가 문을 닫게 되면서 북경으로 건너가게 됐다.


북경에서 '의열단장' 김원봉과 운명적인 첫 만남을 갖게된 김익상 의사는 김원봉의 열혈투쟁 의식에 반한다. 그리고 민족독립을 위해 헌신할 것을 맹세하고 의열단원이 된다.


인사이트일제 수감자 신상기록 카드 속 김익상 모습 / 국가보훈처


1921년 9월 9일. 김원봉으로부터 폭탄 2개와 권총 2정을 받아든 김익상은 삼엄한 일경의 눈을 따돌리고 조선으로 돌아온다.


9월 12일. 김익상 의사는 전기수리공으로 위장해 지금의 남산에 있던 조선총독부 2층에서 폭탄을 터뜨리고는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왔다. 적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태연하게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대범함 덕분이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 공격은 실패했고 이에 한을 품은 김익상 의사는 일제 침략 군부 거물 육군대장 타나카 기이치 암살 시도에 가담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사형선고를 받은 김익상 의사는 상고하지 않는 등 법정 투쟁을 계속 이어오다가 감형을 받고는 고향에 돌아왔다. 하지만 다시 일본인 고등경찰에 연행된 후 행적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


김익상 의사가 언제 죽었는지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알 길이 없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