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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에서 분노 유발했던 '반란군' 실존 인물들의 12·12사태 성공 후 바뀐 인생

12·12사태를 모티브로 한 만큼 빌런의 실존 인물도 존재하는데, 이들은 쿠데타 성공 이후 어떻게 살았을까.

인사이트영화 '서울의 봄'


[인사이트] 김한솔 기자 =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영화 '서울의 봄'.


영화에서는 전두광이 군사 반란을 일으킬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운 하나회 군인들과 무능한 대처로 승리에 길을 터준 인물까지 각종 '빌런'이 등장한다.


12·12사태를 모티브로 한 만큼 빌런의 실존 인물도 존재하는데, 이들은 쿠데타 성공 이후 어떻게 살았을까.


인사이트영화 '서울의 봄'


1. 대한민국 국방부장관 노재현


영화 '서울의 봄'에서 배우 김의성이 연기한 오국상은 당시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이었던 노재현을 모티브로 했다.


영화에서 그는 전두광이 총장을 납치하는 과정에서 총격이 발생하자 잠옷 차림으로 뛰어나가 숨어버린다. 이후 반란군의 편에 서서 회군 명령을 내린 것도 모자라 직위해제까지 하며 반란군의 승리에 쐐기를 박아버렸다.


1996년 12·12 주범들에 대한 서울고등법원의 판결문에 따르면 실제로도 노재현은 군사 반란의 시작과 동시에 공관에서 도망쳐 단국대로 도망쳤다. 이후 B-2 벙커로 몸을 숨겼다가 미 육군 제8군 영내에 있는 한미연합군사령부로 이동했다. 이어 국방부로 도망쳤다가 쳐들어온 반란군에게 붙잡혔다고 한다.


이후 장태완(영화 '서울에 봄' 이태신의 모티브) 장군에게 "가만히 있어! 시키는 대로 해. 절대 충돌하지 말라" 등과 같은 무장해제하고 반란군에게 백기투항하라는 것과 다름없는 지시를 내렸다.


인사이트노재현 / 국방일보


군사 반란이 성공한 직후 노재현은 장관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1981년 공기업인 한국종합화학공업 사장을 거쳐 한국화학연구소 이사장 자리를 맡았다.


이후에는 한국비료공업협회 회장에 올랐다가 1988년 62살에 퇴임했다.


노재현은 2019년 9월 25일, 93세의 나이로 사망해 국립대전현중원에 안장됐다.


슬하에는 6명의 자녀가 있으며 그 중 딸 노경선씨는 지에스(GS)그룹의 넷째 아들 허명수 지에스건설 부회장과 결혼했다.


인사이트영화 '서울의 봄'


2. 허화평 대령


영화 '서울의 봄'에서 배우 박훈이 연기한 문일평 대령은 당시 국군보안사령관 비서실장 허화평 대령을 모티브로 했다.


영화에서 그는 전두광의 비서실장으로, 군인들의 모든 통화라인을 도청하며 군사반란 작전에 적극 가담했다.


실제로도 허화평은 제5공화국의 '개국공신', '설계자' 등으로 평가 받는다. 그 증거로 1980년 9월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대령이었던 그는 준장으로 예편, 청와대비서실의 보좌관으로 임명됐다. 이 자리는 기존에 없던 직위로, 전두환이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해 일부러 만든 자리로 알려져 있다.


허화평은 이후 청와대비서실 산하 정무제1수석비서관 등을 지내며 사실상 전두환 정권의 2인자 노릇을 했다.


인사이트허화평 / 뉴스1


그러나 권력이 세지면서 전두환과도 갈등을 겪고 미국행을 택했다.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다시 돌아와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포항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됐다.


1992년 김영삼 지지를 선언하며, 제14대 대통령 선거 전 민주자유당에 입당하였으나, 1995년 김영삼의 12.12 군사반란 및 5.18 민주화운동 관련 사법 처리 조치로 구속기소됐다가 사면됐다.


현재는 86세의 나이로 미래한국재단 이사장이다.


이밖에 그의 가족사, 가족관계, 거주지 등이 알려지지 않아 보안사 출신답다는 후문이다.


인사이트영화 '서울의 봄'


3. 윤성민 육군참모차장


영화 '서울의 봄'에서 배우 유성주가 연기한 민성배 중장은 당시 육군참모차장이었던 윤성민을 모티브로 했다.


영화에서 그는 직속상관인 육구참모총장이 납치된 정황이 분명한 상황에서도 전두광을 체포하라는 조언을 무시하는 등 신속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전두광의 거짓 신사협정 제안에 넘어가 유일한 희망이었던 8공수의 진입을 막아버리기도 했다.


실제로 윤성민은 육군 지휘계통에 따라 진압 책임을 지게 됐지만 우유부단한 처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성민은 군사반란 이후 연행됐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풀려났다. 당시 반란군이 뒷수습을 하기 위해 포섭한 지휘부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인사이트윤성민 / 뉴스1


그는 1979년 12월24일 육군 제1군사령관에 취임했고, 이듬해 5월에는 육군 대장으로 진급하며 승승장구 했다.


이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과 합동참모본부 의장을 거쳐 1982년엔 제23대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다.


퇴임 후에도 공기업인 한국석유개발공사 이사장, 대한방직협회 회장 자리를 맡았으며 대한교육보험 고문, 현대정공 고문 등을 지내다 2017년 11월 6일 92살의 나이에 숙환으로 사망했다.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