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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참전 6일 만에 '바주카포'로 북한 탱크 3대 박살 내고 '전사'한 스무살의 미군

고향에 임신한 아내를 두고 그는 한국전쟁에 참전해 북한 전차 3대를 격파한 미군 장병이 주목받고 있다.

인사이트월터 모니건 2세 / Wikipedia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수많은 젊은 미국 청년들이 듣도 보도 못한 '코리아(Korea)'라는 이역만리의 나라에 와서 청춘을 희생했다.


자유라는 가치의 수호를 위해서였다. 


스무살의 미 해병 월터 모니건 2세도 마찬가지였다. 고국에 임신한 아내를 두고 그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그리고 참전 6일 만에 적 전차 3대를 격파한 후 전사했다. 


미 해병 1사단 1연대 F중대 소속이었던 월터의 보직은 바주카포(로켓포) 사수였다. 그리고 그의 실력은 대단했다. 


인사이트한국 전쟁에서 사용된 미군 바주카 (미 1기병여단 소속 장병들) / Wikimedia commons


1950년 9월 17일 경기도 부평에서 일어난 전투에서 그는 직접 바주카포를 들고 뛰어나가 적 전차를 격파했다. 


그의 일사불란한 대응에 기세는 바로 미군쪽으로 흘렀다. 북한군은 200여명이 사살돼거나 포로로 잡혔다. 반면 아군의 피해는 경상 1명에 불과했다. 


월터의 용기가 만들어낸 '부평 전투'의 승리였다. 부평 전투는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을 잇는 전투로 한국전쟁에 있어 그 의미가 크다. 


인사이트서울 진격 과정에서 파괴된 북한 T-34 전차 / Wikimedia commons


부평 전투에서 큰 공적을 세운 그는 1연대의 진격로를 따라 서울 영등포로 향했다. 이곳에서 약 3일간의 전투가 벌어지는데 이를 '영등포 전투'라 칭한다.


20일 새벽 월터가 속한 1연대는 북한의 기습 공격을 받았다. 전멸될 위기였다. 그 순간 적 탱크를 향해 달려간 이는 다름 아닌 스무 살의 청년 월터였다. 


그는 지체 없이 바주카포를 짚어 들고 적 탱크 바로 앞까지 포복으로 기어가 직접 바주카포를 쐈다. 북한의 탱크는 그 자리에서 파괴돼 불타올랐다. 


인사이트부평전투 승전 기념비 / 국가보훈처 홈페이지


곧바로 두 번째 탄을 장전한 월터는 또다시 다음 전차를 정확히 격파했다. 단 두 발에 적 전차 두 대를 격파한 그의 활약에 적들은 당황했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3번째 바주카포를 발사하려는 그의 몸에 북한의 탱크에서 날아온 기관총 수발이 날아들었다. 월터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참전 6일 만에 낯선 곳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미군은 스무 살의 어린 나이에도 용감히 싸웠던 그에게 명예훈장(Medal of Honor)를 수여했다. 한국 정부는 15년 뒤인 1965년 그를 명예 서울 시민으로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