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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만 마주쳐도 왜구들 '오줌' 지릴 것처럼 개쎄(?)보이는 이순신 장군 복원 얼굴

수년간 이순신 연구에 매진했던 김세랑 작가는 수많은 사료와 고증을 바탕으로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담은 피규어를 만들었다.

인사이트YouTube 'KBS News'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지난 7월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일제강점기 때 그린 한국 무인의 초상화 속 주인공이 이순신 장군일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가 나왔다. 


당시 경향신문과 KBS 보도에 따르면 이 초상화 속 인물은 조선 시대 무관들이 입었던 푸른색의 철릭에 머리에는 전립을 쓰고 있으며 지휘할 때 사용하는 등채를 쥐고 의자에 앉아있다. 


그의 등 뒤에는 수 척의 거북선이 그려진 병풍도 보인다. 


당시 KBS는 키스의 초상화 속 인물이 이순신 장군 표정 영정보다 실제 충무공의 모습과 가깝다고 전했다. 


이에 많은 시민은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양쪽으로 길게 찢어진 눈, 뒤집어진 입술, 적은 숱의 수염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인자한 모습의 이순신 장군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인사이트


인사이트YouTube 'KBS News'


이런 가운데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재연한 피규어가 누리꾼들의 관심을 받았다. 놀랍게도 피규어 속 이순신 장군의 모습은 키스의 초상화와 많이 닮았다. 


해당 이순신 장군 피규어는 김세랑 작가가 지난 2013년 제작해 공개했던 것으로 깊게 팬 주름과 거무스름한 얼굴 피부, 매서운 눈매가 눈길을 끈다. 


100원짜리 동전 속 인자한 이순신 장군이 아닌 진짜 '용장'의 모습이다. 


김 작가는 어떻게 이러한 이미지의 이순신 장군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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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김세랑 작가 제공


이에 의문을 품고 김 작가에게 문의한 결과, 용장 이순신 장군의 이미지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상세한 내용을 알 수 있었다. 


김 작가는 먼저 '난중일기'에서 드러난 이순신 장군의 성격과 신체적 특징을 파악했다고 말했다. 


난중일기 속 충무공이 앓고 있던 병이라든지, 외모는 물론 당대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충무공의 모습을 찾았다. 


당대 무인들의 모습도 자료를 통해 확인했다. 


김 작가는 "당시 무관들은 신장이나 용력이 일반인들을 뛰어넘어야 했다. 이러한 보조 증거들을 복합적으로 살펴서 이순신 장군의 키, 체형, 용모, 노화 상태 등을 유추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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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김세랑 작가 제공


무엇보다 그에게 큰 영감을 준 건 이순신 장군의 후손인 이봉상 장군의 초상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5대손인 이봉상 장군은 18세기 활약했던 조선 시대의 군인으로 그 이력이 충무공과 비슷하다. 


경종 재위 중에는 이순신 장군이 맡았던 삼도수군통제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일본 교토 대학교에서 전시 중인 이봉상 장군의 초상을 보면 깊게 팬 이마의 주름과 매서운 눈빛 오뚝한 콧날이 눈에 띈다. 


볼은 푹 페어 인상을 더욱더 날카롭게 만들고 실제보다도 더욱 나이가 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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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김세랑 작가 제공


김 작가는 "이봉상 장군의 초상을 현재로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용모를 추정할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인 자료서 판단했다"며 "여기에 다른 기록들을 참고해 충무공의 모습을 유추했다"고 밝혔다.


키스의 초상화에 대해서 그는 "처음 키스의 그림을 보고 재 작품과 너무 닮아서 놀랐다"라며 "키스가 방문했을 당시 조선에 남아있던 그림을 모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키스가 당시에 남아 있던 한 무관의 초상화를 직접 보고 그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김 작가는 "키스가 처음 본 그림은 이순신 장군 사후 또는 정조 시기에 그려졌을 것으로 보인다"라며 무인 뒤 거북선이 그려진 병풍을 그 이유로 제시했다.


충무공 생전에 그려진 초상화라면 뒤에 거북선 병풍을 배경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낮다는 뜻이었다. 


인사이트


인사이트김세랑 작가 제공


김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이순신 장군의 표준 영정은 실제 성격을 크게 반영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외유내강의 소유자였던 이순신 장군은 보수적이고 예민하면서도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군법을 어긴 병사에게는 무거운 처벌을 내렸고, 적응 응징하는 데는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당시 일본은 이런 이순신을 향해 "입으로 번개를 뿜어서 거기에 맞아 죽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게다가 이순신 장군은 수년을 바다에서 보낸 무인이었다. 뙤약볕 아래에서 병사들을 직접 훈련시키고 배 위에서 전투에 임했던 것을 고려하면 그의 피부는 상할 때로 상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 작가는 그동안 이순신 장군을 너무 관습적으로 묘사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에서 이순신 장군의 실제 용모를 아는 건 불가능하지만, 당시의 상황과 당대 사람들의 신체적 특징, 이순신 장군과 관련한 기록 등을 종합적으로 유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