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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빼고 모든 게 의미 없을 줄 알았다면 모든 걸 포기했을 거야"···죽은 여친 향한 남자의 편지

지난 6일 페이스북 페이지 '연세대학교 대나무숲'에 올라온 남자의 넋두리가 많은 이들을 울렸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Instagram 'jtbcdrama'


[인사이트] 김한솔 기자 = 콜센터에서 일하며 고시 준비를 하는 여자와 어느 평범한 회사의 대리인 남자.


여느 커플처럼 잔잔한 연애를 하던 두 사람은 여느 커플과는 다른 이별을 했다. 며칠 전 여자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남자의 곁을 떠난 것이다.


늘 함께할 거라 생각했던 그녀의 죽음에 남자는 그제서야 그녀의 '신호'를 찾아가고 있었다.


지난 6일 페이스북 페이지 '연세대학교 대나무숲'에 올라온 남자의 넋두리가 많은 이들을 울렸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JTBC '제 3의 매력'


사연을 올린 A씨는 장례식이 끝난 후 3일 내내 깊은 잠을 잤다. 눈을 떴을 때 그의 머릿속에는 전화 연결음과 진상 고객의 고성이 생각난다며 밤잠을 설치던 그녀가 밥도 안 먹고 이틀씩 자곤 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저 피곤한 줄 알았던 그녀의 깊은 잠의 신호는 우울감이었다.


그녀의 집에 찾아갔을 때 먼지 쌓인 수저와 다 쉰 반찬이 담긴 그릇이 널려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점점 홀쭉해지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울지도 않고 우울한 티도 내지 않아 그저 다이어트로 살이 빠졌나보다 생각했던 그녀의 얼굴. 이 신호 역시 우울감이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그런 줄도 모르고 그는 여자의 우는 목소리가 듣기 싫어 자는 척 전화를 안 받기도 했다.


며칠 전 그녀가 "고시고 콜센터고 다 포기하고 싶다"고 털어놨을 땐 따뜻한 한마디 해주지 못했다. "원래 일이랑 시험이 그렇지 뭐"라는 가벼운 말로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다시는 그녀의 손을 잡지도, 안지도 못한다는 사실에 남자는 그녀가 자신의 전부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를 뺀 모든 게 이렇게 의미가 없을 줄 알았다면 모든 걸 포기해서라도 너에게 모든 의미를 기울였을 거다"


아래는 남자가 남긴 글의 전문이다.


여자친구가 죽었다. 며칠 전에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영정사진에 대고 절까지 했는데 그냥 모르는 사람 장례식장이었던 것 같다. 몇 달 전에 출장을 다녀와서 연락도 잘 안되고 얼굴도 못 본 적이 있는데 지금이 그냥 출장 기간 같다.


집이 너무 조용하고 침대가 너무 크고 휴대폰이 울리지 않아서 질식할 것 같다. 고통은 모르겠다. 지인들은 나한테 괜찮냐고도 물어보지 못하는데, 그냥 여자친구랑 안 만나는 휴일을 보내는 것처럼 지내고 있다.


여자친구는 콜센터에서 일하면서 고시준비를 했다. 나는 그냥 평범한 회사 대리였다. 어제 퇴사했다. 회사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기에 내가 퇴사를 할 줄은 그것도 여자친구의 죽음 때문에 퇴사를 할 줄은 몰랐다. 퇴사하고 돌아오는 길은 그냥 퇴근길이랑 똑같았는데 그 길의 끝에 너가 없다는 게 달랐다. 다시는 끝에 너가 없는 퇴근길을 걷고 싶지 않아서 퇴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아무것도 안 먹고 3일을 잤다. 너는 전화 연결음이랑 진상 고객이 소리치는게 잘 안 잊혀져서 밤에도 잠이 안 온다고 하면서도 어떤 날은 밥도 안 먹고 이틀씩 자곤 했는데, 나는 그게 그냥 피곤해서 그런 줄 알고 별 신경을 안 썼다. 아무 생각없이 잠만 미친 듯이 자는 게 우울해서 그런 걸 난 너가 죽어서야 알았다.


네가 힘들다고 한 거 솔직히 짜증이 많이 났다. 너가 밤에 울면서 전화하는 거 일부러 자는 척 안 받은 적 많다. 다시 네가 새벽에 전화를 하면 회사 지각 결근 같은거 개나 주라고 하고 들어줄 것 같은데 다시는 네가 나한테 전화를 못 한단다. 나는 그걸 장례식을 갔다 와도 믿지를 못해서 밤에도 몇 번이나 네 부재중 전화를 찾아 폰을 뒤진다.


며칠쯤 전에 네가 밥을 먹다가 피식 웃으면서 고시고 콜센터고 다 포기하고 싶다고 했을 때 내가 한 말이 평생 안 잊혀질 것 같다. 원래 일이랑 시험이 그렇지 뭐. 왜인지 알아도 한 번만 더 물어봐 줄걸. 아니면 손이라도 잘 잡아 줄걸. 아니면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볼걸. 그때 그래 맞아 하면서 웃던 네 얼굴도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네 집에는 먼지 쌓인 수저랑 다 쉰 반찬이 담긴 그릇들이 널려 있었단다. 밥도 안 먹고 힘들어하는 줄 모르고 나는 홀쭉해진 네가 다이어트하는 줄 알았다. 너는 언제부턴가 울지도 않고 우울한 티도 안 냈는데 그게 진짜 괜찮아서 그런 줄 알았던 멍청한 나는 네가 병원 다니는 걸 네 집에서 우울증 약이 나온 걸 보고야 알았다. 그 무미건조한 모습이 그냥 다 포기한 모습이란 걸 그때 알았다.


이렇게 나한테 죽음이 가깝게 올 줄 알았으면 교회 같은 것도 다닐 걸 그랬다.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는 게 너무 싫다. 내가 죽으면 널 못 볼까봐 그게 너무 무섭다. 회사 일 때문에 내가 조금이라도 피곤해하면 너는 그렇게 호들갑을 떨면서 걱정해 줬는데 네가 죽을 때까지 나는 그거 하나 해주지 못해서 그래서 네가 죽었나 보다.


자살이라고 했는데 나는 너무 생생하게 느껴질까 봐 네가 약을 입에 우겨넣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네가 없는데 회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너를 뺀 모든 게 이렇게 의미가 없을 줄 알았다면 모든 걸 포기해서라도 너에게 모든 의미를 기울였을 거다.


너랑 내일 만나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먹고 놀다가 집 앞까지 데려다줄 것 같다. 회사일 때문에 오래 못 만났던 친구들이랑 술을 마실 때 네가 찾아왔었다. 공부하다가 웬일로 왔는지 궁금했었는데 해쓱한 너에게 빨리 들어가서 쉬라고 하고 한 번 안아준 게 다였다. 그때 홀로 걸어서 집으로 가던 네 뒷모습은 어땠는지 그것도 취한 상태여서 기억 못하는 나 자신을 찢어 죽이고 싶다.


너희 부모님은 날 가족으로 생각했기에 난 마지막으로 네 얼굴을 보고 널 보낼 수 있었다. 넌 차갑고 편안해 보였다. 생전에 네가 그렇게 편안한 얼굴을 했던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났다. 나를 버리고 세상을 버리고 너는 너무 편안해 보였는데 그게 원망스럽지도 않았다. 네 손을 다시는 못 잡는 게 다시는 널 안지 못하는 게 다시는 네 웃는 얼굴 아니 우는 얼굴이라도 보지 못한다는 게 그냥 문장 같고 현실같지가 않다. 사는 거 같지가 않고 꿈꾸는 것 같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