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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왕의 장인 '포스타 장군'을 독 묻힌 칼로 찔러 죽게한 애국청년의 정체

겨우 24살의 나이로 일본 왕족을 독검으로 처단한 그의 이름은 '조명하'다.

인사이트조명하 의사 / EBS 클립뱅크


[인사이트] 박아영 기자 = "나는 조국의 원수를 갚았노라. 다만 조국 광복을 못 본 채 죽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1928년 혈혈단신의 몸으로 타국에서 일본 왕족을 처단한 유일한 독립운동가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조명하, 황해도 출신의 24살 청년이었다.


조명하 의사는 신천 군청의 서기 출신으로 일제 치하에서도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전혀 다른 삶을 택했다.


인사이트구니노미야 구니히코 / wikipedia


때는 1926년 6월 10일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의 상여 행렬을 따라 대한독립 만세가 울려 퍼지던 날이었다.


난생처음 뜨거운 피가 끓는 것을 느낀 조명하 의사는 남은 삶을 오로지 독립운동에 바치기로 결심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이길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갓난 아들과 아내를 두고 오사카로 혼자 유학까지 갔다.


그렇게 1년을 주경야독했고 본격적인 항일투쟁을 위해 그는 상해 임시정부로 떠났다.


인사이트KBS1 '나의 독립 영웅'


하지만 그는 턱없이 부족한 자금 때문에 경유지 대만에서 멈춰 일을 하며 돈을 벌어야만 했다.


녹차 밭에서 일하면서도 조명하 의사는 밤낮으로 무술과 검술을 연마하며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뜻하지 않은 소식을 접하게 됐다. 일본 육군대장이자 일왕의 장인인 구니노미야 구니히코가 일본군을 격려하기 위해 이곳에 행차한다는 것.


상해에서 거사를 치르려고 했던 그는 곧장 자신의 계획을 바꿨다.


인사이트KBS1 '나의 독립 영웅'


1928년 5월 14일 오전 9시 55분, 드디어 그토록 기다려왔던 구니노미야 대장의 행렬이 시작됐다.


조명하 의사는 독을 바른 단도 한 자루를 품에 숨긴 채 환영식 인파에 섞여있었다.


그리고 구니노미야 대장의 모습이 눈에 띄자마자 조명하는 기다렸다는 듯 차량을 향해 훌쩍 뛰어올랐다.


이후 그는 단도를 던지며 외쳤다. "대한 독립 만세"


인사이트KBS1 '나의 독립 영웅'


일왕의 장인은 그렇게 피할 틈도 없이 독검을 맞았다. 조명하 의사는 사건 직후 현장에서 일본군에게 바로 체포됐다.


결국 조명하 의사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사형장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조국의 원수를 갚았노라. 다만 조국 광복을 못 본 채 죽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저세상에 가서도 독립운동은 계속하리라"


조명하 의사는 사형을 당했고 그로부터 3개월 뒤, 구니노미야는 온몸에 독이 퍼져 죽었다.


24살의 청년 조명하는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조선 역사상 유일하게 일본 '왕족'을 처단한 사람으로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