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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을 조선 독립과 매국노 처단에 바친 김구 선생에 대해 우리가 몰랐던 사실 7가지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을 맞이해 설립부터 해방이 오는 날까지 임시정부와 나라를 위해 헌신을 아끼지 않았던 백범 김구의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살펴본다.

인사이트국가보훈처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1919년 한반도에 뜨겁게 일렁였던 3·1 만세운동의 목소리는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그해 4월 11일 중국 상해 프랑스 조계에서 독립운동 대표자 29명이 모여 회의를 열고, 58개조에 이르는 임시 헌법을 공표했다. 


이는 지금에 이르러서 대한민국의 '뿌리'가 됐다.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을 맞이해 설립부터 해방이 오는 날까지 임시정부를 위한 헌신을 아끼지 않았던 백범 김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는 기회를 가져보고자 한다.  


일생을 조국 광복을 위해 바쳤던 김구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 7가지를 소개한다. 


어릴 적에 엄청난 '개구쟁이'였다


인사이트백범 김구 기념관


어릴 적 백범 김구는 엄청난 개구쟁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아버지가 숨겨놓은 돈을 갖고 떡을 사 먹으려다 걸려 혼나기도 하고, 엿을 먹으려고 멀쩡한 수저를 부러뜨리기도 했다. 


어머니가 빨래를 하고 있을 때는 시냇물에 물감을 풀 정도로 엄청난 개구쟁이였다. 


김구의 어릴 적 이름은 '김창수'가 아니라 '김창암'이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대장 김창수'


김구의 본래 이름을 김창수로 알고 있는 이도 있으나, 어릴 적 그의 실제 이름은 김창암이다. 


김창암에서 김창수로 이름을 바꾼 것은 그의 나이 18살 때로 동학에 입도한 후 김창수로 개명했다. 


김창수에서 김구로 개명한 건 1912년 일본의 호적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19살 나이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접주가 돼 700명을 지휘했다


인사이트백범 김구 기념관


황해도 해주 팔봉에서 동학군을 지휘했을 때 그의 나이 불과 19살이었다. 


그는 1894년 동학 지도자 최시형의 지시로 700명의 부하를 이끌고 해주성을 공격할 정도로 동학군에 있어 중요한 인물이었다.


비록 패퇴해 도망치는 신세가 됐으나 이로 인해 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과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됐다. 


칼을 든 일본인을 맨 손으로 때려 죽였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대장 김창수'


1896년에 일어난 이 사건은 치하포 사건으로 기록됐다. 


당시 황해도 치하포 인근을 지나던 김구는 여관방에서 조선인으로 위장한 일본인 쓰치다 조스케와 마주친다.


김구는 이 일본인을 명성황후를 시해한 낭인이라 생각했다. 그가 긴 칼을 차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그를 습격하여 칼을 빼앗고 폭행한 뒤 살해했다. 


임시정부 수립 당시 그의 직책은 오늘날 '경찰청장'이었다. 


인사이트경무국장 시절 김구 / wikipedia


김구는 1919년 8월 12일 지금의 경찰청장 격인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에 임명됐다.


당시 경무국은 임시정부 내무부에 속해 이를 중심으로 비밀 지방조직인 연통제 산하 경무사와 경무과, 교민단 산하 의경대 등으로 조직이 꾸려졌다.


경무국의 주된 업무는 임시정부 요인 경호, 일제 정탐 방지, 정찰 등이었다. 의경대는 상하이 교민단의 자치와 안전을 지키고, 일본 측 분자 즉 매국노의 행동을 경계하는 경찰이었다.


초대 경무국장이었던 김구 선생은 일제 침략자·반민족행위자를 처단하는 등 오늘날 경찰의 경비·경호·정보·보안 기능에 해당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해방 이후 미군정은 김구에게 '타이거'라는 별명을 붙였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대장 김창수'


광복 이후 38선 이남을 장악했던 미 군정은 자신들에게 비협조적이던 김구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다. 


그래서 그를 무자비하고 부도덕한 인물로 묘사하기도 했다. 이에 그에게는 '블랙 타이거'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미 군정에 입장에서 김구는 제거해야 할 맹수처럼 보였던 듯하다. 


김구 선생은 키 180cm가 넘는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였다 


인사이트온라인 커뮤니티


여러 사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듯 김구는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한 기럭지를 자랑한다.


당시 서양인들의 신장과 비교해도 크게 차이 나지 않을 정도다.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역사학자들은 김구의 키가 최소 180cm 이상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KBS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김구 선생의 키를 190cm 정도로 예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