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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오늘(8일), 도쿄 한복판서 '대한 독립' 외쳤던 조선 유학생들

일본에 있던 조선인 유학생들은 100년 전 오늘인 2019년 2월 8일 일본의 수도 도쿄에 모여 '2·8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인사이트2·8 독립 선언의 주역들 / 국가보훈처 블로그 '훈터'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일본의 침략으로 나라를 빼앗긴 후, 전 세계 각지에서 공부를 하던 유학생들 또한 조선의 독립을 위해 앞장섰다.


적국이었던 일본에서도 독립을 향한 유학생들의 움직임은 뜨거웠다. 


1919년 1월 6일, 일본에 있던 유학생들은 도쿄 간다(神田)에 있는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웅변회를 열고 다음과 같이 결의하였다. 


"오늘의 정세는 우리 조선 민족의 독립운동에 가장 적당한 시기이며, 해외의 동포들도 이미 실행 운동에 착수하고 있으므로 우리도 마땅히 구체적 운동을 개시하여야 한다"


이들은 '조선청년독립단'을 설립하고 거사 일은 2월 8일로 정했다. 그 사이 유학생들은 또 은밀하게 자금을 모으고 독립선언서를 만들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동주'


거사 당일이었던 2월 8일은 아침부터 눈발이 날렸다. 수북이 쌓일 정도로 많은 눈이었으나, 독립을 향한 이들의 열망을 꺾지 못했다.


학생들은 눈발을 헤치고 나가 일본의 '심장'인 도쿄 이곳저곳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했다. 약 200여 명의 유학생이 기독교청년회관에 모여 선언서를 낭독했다.  


"조선청년독립단은 우리 2천만 민족을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얻은 세계만국 앞에 독립됨을 선언하노라"


'조선의 독립'이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울려 퍼지자 일본은 충격받을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경찰을 동원해 닥치는 대로 조선인 유학생들을 연행하고 강제 해산시켰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동주'


당시 일본에 유학 중이던 여성 독립운동가 김마리아도 이 독립 선언에 참여했다. 여기저기서 많은 유학생이 잡혀가는 가운데, 그녀는 독립선언서 10장을 복사에 옷 사이에 숨기고 현해탄을 건넜다. 


젊은 조선 청년 유학생들의 목소리를 한국의 많은 사람에게 전하기 위함이었다. 


김마리아는 이 독립선언서를 들고 다니며 국내에서의 거족적인 독립운동을 촉구했다. 


그리고 곧 머지않아 1919년 3월 1일 아침이 밝았다. 일본에 있던 조선인 유학생들의 목소리는 국내 곳곳으로 퍼져 우리 역사상 가자 뜨거웠던 만세운동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