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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선고한 일본 판사에 안중근 의사가 웃으며 건넨 질문 하나

사형을 선고받아 죽음을 앞둔 안중근 의사는 끝까지 의연한 모습을 잃지 않고 일제 재판부에 미소를 지으며 다음과 같이 물었다.

인사이트안중근 의사 기념관


[인사이트] 디지털뉴스팀 = "이보다 더 극심한 형은 없소?"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사형을 선고받은 안중근이 선고 공판에서 한 말이다.


최근 KBS1 '천상의 컬렉션'은 109년 전,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역에서 울려 퍼진 총성의 이야기를 전했다. 


바로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의 의거 이야기다.


인사이트국가보훈처


이날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도 모른 채 하얼빈역으로 향했다. 단지 이토 히로부미가 도착한다는 소문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안중근을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럽인과 중국인을 통제하는 러시아가 수수한 옷차림의 그를 일본인으로 착각했다. 우연히 찾아온 천금 같은 기회였다.


환호하는 일본인 인파 속에 숨은 안중근은 열 발자국 정도의 거리에서 이토 히로부미로 추정되는 자에게 4발, 그 옆에서 수행하는 일본인들에게도 3발을 쐈다.


인사이트의거 직후 러시아 헌병에 체포되는 안중근 / KBS1 '천상의 컬렉션'


안중근은 의거 직후 러시아 헌병에게 체포됐고, 1910년 2월 7일부터 8일간 진행된 6번의 공판 끝에 결국 사형을 선고받았다.


죽음을 코앞에 뒀으나 안중근은 재판부에 웃으며 "더 극심한 형은 없느냐" 물었다. 의연했다.


한 달 뒤 3월 26일 오전 10시 중국 뤼순 감옥에서 안중근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인사이트효창공원에 위치한 안중근 의사의 가묘 / 뉴스1


그는 본인이 죽거든 자신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해방 후 고국으로 보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는 주인을 기다리는 빈 무덤만이 남겨져 있다.


일제가 사형 이후 안중근의 유해를 꼭꼭 숨긴 이유에서다. 아직도 안중근 유해의 행방은 묘연하다.


일본제국주의의 심장을 겨눈 그 날의 안중근은 불과 31살 청년이었다. 짧은 생이지만 누구보다도 밝고 빛난 불꽃 같은 업적을 남긴 그였다.


인사이트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이 사용한 총알이 일본 헌정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 KBS1 '천상의 컬렉션' 


한편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 위해 발사한 7발의 총알 중 하나는 현재 일본 헌정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해당 총알은 이토 히로부미를 수행하던 다나카 세이지로의 왼쪽 다리에 박혔던 것이다.


당시 안중근의 재판 당시 증거물로 채택됐다가 후손이 기증하면서 보존하게 됐다.


이후 다나카 세이지로는 평생 다리를 절어야 했으나 안중근의 고매하고 당당한 모습에 여생 동안 그를 존경했다고 전해진다.


Naver TV '천상의 컬렉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