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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밤하늘에 뜬 '별'을 좋아하는 연세대 천문학과 학생입니다"

한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생이 밝힌 현실과 꿈에 대한 고민과 결정이 누리꾼들에게 공감과 감동을 주고 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인사이트] 디지털뉴스팀 = "천문학과요"


연세대에 합격했다는 말에 날아들어온 '전공' 질문에 학생은 자신있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가 느껴야 했던 건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이었다.


지난 14일 연세대학교 대나무숲에는 자신을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생이라고 밝힌 A씨의 고민과 결심을 담은 한 편의 글이 게재됐다.


담담하게 현실적인 걱정을 밝힌 A씨의 사연에 누리꾼들은 많은 공감을 보내고 있다.


인사이트Facebook 'yonseibamboo'


A씨는 연세대에 합격한 뒤 '어느 과에 합격했어?'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 그는 간단명료하게 "천문학과요"라고 답했다. 


그 답을 들은 사람들은 질문을 그만 두거나, 다시금 "거기 가서 뭐할래?", "취직은 잘 된다니?"라는 등의 질문을 퍼부었다. 


그러나 A씨는 그저 꿈을 쫓았을 뿐이었다. 8살 어린이때부터 별 보는 것을 좋아했을 뿐이다. 


새벽 늦게까지 밤하늘을 바라보던 8살 소년은 빛나는 별을 탐구하는 천문학자를 꿈꿨고, 고민없이 연세대 천문학과에 들어갔다.


인사이트Instagram 'giljong.park'


하지만 현실의 벽은 냉혹했다. 2년간 군대에 다녀온 뒤 천문학이 너무 어렵고, 자신이 재능이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마음 속에서 "취직 안 할 거냐", "거기 가서 뭐 할 거냐"라는 질문이 쏟아졌다. 그는 좀처럼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 그때 A씨의 마음 속에 오롯이 남아 있던 '8살 소년'이 대신 답했다. 


"천문학자가 아니면 안돼"


A씨는 꿈에 나타난 8살 소년의 고집 덕분에 깨달았다. 소년에게 건넨 질문은 천문학과에 처음 들어갔을 때 자신이 들었던 말이라는 사실을.


결국 A씨는 자신이 아직 밤하늘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다시 한번 도전에 나서기로 했다. 우주를 더 알아보고 싶은 8살 아이가 이긴 것이다.


아래는 꿈을 선택하고 자신의 길을 걷는 A씨 글의 전문이다.


연세대학교에 합격하고 나서 많은 질문을 받았었는데, 가장 자주 받은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어느 과에 합격했어?'였다.

'천문학과요'

이 말을 하는 순간의 미묘한 분위기 변화를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대체로 두 가지 반응으로 나뉘는데, 대화를 그만두거나 아니면 다시 질문을 한다.

'거기 가서 뭐 할 거니?', '취직은 잘 되는 곳이니?', '학교 간판 때문에 들어간 곳이니?'......


어렸을 때부터 별 보는 것을 좋아했다.

8살 때 부모님을 졸라서 생일 선물로 싸구려 천체망원경을 받았다.

종종 아빠와 함께 망원경으로 새벽 늦게까지 밤하늘을 봤다.

주말이 되면 온 가족이 별이 잘 보이는 시골 논밭에서 별의 개수를 세고는 했다.

그때부터 내 꿈은 천문학자였다.

누가 물어봐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꿈이 생겼다는 사실이 좋았다.


시간이 지나고 점점 더 바빠지면서, 밤하늘보다는 문제집과 교과서를 보는 날이 더 많아졌다.

즐거운 기억들은 자연스럽게 추억으로 바래갔다.

하지만 8살 아이의 꿈은 기억 속에 조용히 있다가도, 삶의 갈림길에 설 때마다 뛰쳐나왔다.

고등학교를 정할 때도, 대학교를 정할 때도...


마치 관성처럼, '나는 천문학자가 될거야'라는 생각이 어떠한 의심도 없이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어졌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군대에 있었던 2년은 ‘외부의 힘’ 으로는 충분했다. 처음으로 현실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연세대에 합격했을 때 들었던 그 불쾌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다.

내가 정말 천문학에 재능이 있을까?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었다.

 

복학을 했다. 공부를 하면서 느꼈다. 이 길이 내 길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느낌은 확신으로 변해갔다. 지금은 거의 확신한다. 나는 재능이 없다.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다. 나는 천문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하지만 꿈을 포기하려 할 때마다 8살 아이가 기억 속에서 계속 나타나 나를 가로막는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봐도 요지부동이다. 자기는 천문학자 아니면 안된다고 한다.

재능이 없다고 말해도 듣지를 않는다.


어느 순간, 그 사람들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합격했을 때 나한테 질문한 사람들 말이다.

'거기 가서 뭐 할건데?', '돈 잘 벌 수는 있어?', '취직 안할거야?'...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밤하늘을 좋아한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저 넓은 우주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아직도 하고 있다.


결국, 8살 짜리 아이가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