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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전 열리는 95년 전 오늘(1일), 일본 열도 뒤흔든 '관동대지진'이 일어났다

사망자와 행방불명이 총 40만 명에 달했던 관동대지진은 조선인 학살의 시발점이 되었다.

인사이트관동대지진 / 위키디피아


[인사이트] 변세영 기자 = 드디어 오늘(1일) 저녁 8시 30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한일 결승전이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보고르의 파칸사리 경기장에서 펼쳐진다.


이는 숙적 일본과의 경기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회 우승 2연패를 결정짓는 경기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런데 9월 1일은 2018년뿐만 아니라 95년 전인 1923년에도 잊지 못할 날이었다.


1923년 9월 1일, 유난히도 을씨년스러웠던 관동 지방의 새벽.


일본 도쿄와 요코하마 주변에는 아침부터 강한 바람을 동반한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뒤이어 규모 8의 강한 진동이 관동 일대를 급습했고 순식간에 발생한 화재로 도시가 불바다가 됐다. 관동 지역이 초토화돼는 순간이었다. 


인사이트

관동대지진 / 위키디피아


이 지진으로 집 12만 채가 무너지고 45만 채가 불탔으며 사망자와 행방불명이 총 40만 명에 달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먹을 물과 식량이 부족해 패닉상태가 됐다.


극한의 재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이성을 잃어갔고, 결과적으로 이는 나라를 잃고 일본 관동지역으로 돈을 벌러 온 조선인들에게 비극이 됐다.


"조선인들이 방화했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유언비어는 마치 사실인 양 떠돌았고 일본 내 조선인들에 대한 증오감이 켜졌다.


그 당시 일본의 내무대신 미즈노(전 조선총독부정무총감)는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터무니 없는 소문을 퍼뜨리도록 하며 민심에 불을 지폈다.


인사이트학살한 한국인을 내려다 보는 자경단 / 한국근현대사사전


일본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해 군대와 경찰을 동원했다. 이는 집단학살(제노사이드)을 알리는 신호였다.


일본 경찰은 민간단체인 자경단을 긴급모집해 조선인들을 살해하기 시작했다.


자경단은 관동 지역을 불시 검문하며 조선인으로 확인되면 가차 없이 죽였다.


학살은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만큼 처참하게 거행돼 지옥을 연상케 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고 어린아이와 어른 할 것 없이 죽창과 칼에 찔려 죽음을 맞이했다.


인사이트관동대지진 때 요코하마 모습 / 위키디피아


당시 독립신문 특파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희생된 조선인은 6,661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조차도 정확한 집계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그들은 그저 닥치는 대로 조선인들을 죽였기 때문에 정확한 희생자 수를 알기 어려웠다.


한편 일본 정부는 지난 2013년 일본 도쿄도 교육위원회는 고교 역사 교과서에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을 학살했다는 표현을 삭제하려고 시도해 논란이 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14년 19대 국회 여야 의원 103명이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위원회'를 설치하는 특별법안을 발의했으나 결국 국회를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