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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억 잃었는데도 뇌암 손자 밥 굶을까봐 걱정하는 치매 할머니

지난 17일 EBS1 '메디컬 다큐 - 7요일'에서는 치매로 인해 단기 기억 상실 및 공격적인 성향 등을 보이는 할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는 한 손자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인사이트EBS1 '메디컬 다큐 - 7요일'


[인사이트] 김천 기자 = 부산 중구의 하늘 아래 첫 동네. 스물아홉 홍정한 씨가 야무진 살림 솜씨로 식사를 준비한다.


한여름 땀을 뻘뻘 흘려가며 준비하는 탓에 지칠 법도 하지만 불편한 내색 한번 안한다. 그가 매번 따뜻한 한 끼를 차리는 이유는 올해 여든아홉인 할머니 채순연 씨를 위해서다.


지난 17일 EBS1 '메디컬 다큐-7요일'에서는 치매 온 할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는 한 손자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할머니는 2년 전 행동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2016년 알츠하이머를 진단받은 할머니는 거부증과 망상, 공격적인 성향과 함께 단기 기억 상실 증상을 보이고 있다.


인사이트EBS1 '메디컬 다큐 - 7요일'


할머니의 증세는 요즘 들어 더 심해졌다. 기억도 예전만 못하고 도통 입맛도 없어 보인다.


할머니는 밥을 먹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밥을 먹은 것으로 기억한다. 이날도 정한 씨가 정성스레 차린 밥을 한 숟갈 들고는 내려놓는다.


내년이면 90세가 되는 할머니가 기력이 쇠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정한 씨다.


정한 씨는 최근 할머니의 음식 거부 증세가 심해지면서 과일과 곡물가루를 넣은 건강 주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 마저도 할머니에게 드릴 때마다 매번 전쟁을 치러야만 한다.


이날도 역시 할머니는 정한 씨가 주스를 가져오자 대뜸 화를 낸다. 정한 씨가 지갑을 훔쳐 갔다는 것이다.


인사이트EBS1 '메디컬 다큐 - 7요일'


치매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인 '도둑 망상'. 타인이 자신의 물건을 가져갔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화가 단단히 난 할머니는 주스를 쏟아버리겠다고 화를 낸다. 할머니에게 연신 죄송하다는 정한 씨에게 침까지 뱉으려고 한다. 이럴 때마다 정한 씨는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정한 씨는 자신의 방으로 가서 천 원짜리 100장을 모아 만든 십만원을 가져온다. 치매가 온 할머니는 돈의 액수에 상관없이 천만원이면 천만원, 백만원이면 백만원, 곧이곧대로 믿는다. 


돈을 가져다드리자 그제야 할머니는 화를 가라앉히고 주스를 받아들인다. 매일 이와 같은 전쟁을 치름에도 정한 씨가 할머니를 지극정성 보살피는 이유는 단 하나다. 자신에게 할머니는 부모님 이상의 의미기 때문이다.


정한 씨가 10살이 되던 해 어머니는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2년 후 아버지도 급성간경화로 인해 곁에서 떠나갔다.


인사이트EBS1 '메디컬 다큐 - 7요일'


때문에 정한 씨는 12살부터 할머니 손에 자라왔다. 할머니는 젊은 시절 억척스럽게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정한 씨를 길렀다. 변변찮은 살림에도 쌈짓돈을 모아 용돈을 쥐여주고 밥상에 늘 계란말이를 올려줬다.


할머니는 정한 씨가 부모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만은 듣지 않기 위해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혹 나쁜 길로 빠지지 않을까 등굣길을 함께했고 없는 형편에도 공부는 꼭 해야 한다며 대학까지 보냈다.


그런 할머니의 은혜를 손자된 도리로서 잊을 순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효도를 해드리기도 전 할머니에게는 치매가 찾아왔다.


현재 명확한 치료법이 없는 알츠하이머. 최대한 병이 천천히 진행되기를 바라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할머니를 위해 어떤 것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있는데 할 수 있는 게 없어 참담한 정한 씨.


인사이트EBS1 '메디컬 다큐 - 7요일'


게다가 정한 씨 마저 2년 전 뇌암 판정을 받아 수술 받았다. 수술로 종양 70%는 제거를 했지만 아직 재발할 확률이 남아있는 상태다.


할머니의 치매 증세가 악화되고 있는 터라 뇌암이 재발할 경우 할머니를 챙겨드리지 못한다는 걱정에 밤잠을 이루기 힘들다.


정한 씨는 오늘도 납골당을 찾는다. 세상에 의지할 곳 하나 없이 홀로 큰 시련을 이겨내야 하는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아버지 앞에서 할머니의 증상에 대해 이야기 한다.


"아버지. 할머니가 치매 중증이세요. 또 폐렴도 있고..."


살아만 있었더라면 그래도 든든한 버팀목이었을 아버지. 아버지에게 할머니를 잘 보필하는 사람이 되어서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생전 아버지의 바람처럼 정한 씨가 다시 웃을 수 있는 날이 올까.


인사이트EBS1 '메디컬 다큐 - 7요일'


이날 정한 씨는 납골당을 찾은겸 할머니와 함께 바닷가를 들렸다. 파도 소리 너울대는 바닷가에서 할머니는 손자에게 신신당부한다. 모든 기억을 다 잃었더라도 이 한마디는 잃지 않았다.


"굶주리지 말고 꼭 밥 챙겨 먹고. 굶지 마라. 건강하게 살아. 꼭 부탁한다"


평생 정한 씨를 보살펴온 할머니. 이제는 정한 씨가 할머니의 버팀목이다. 정한 씨는 할머니 곁에서 평생을 지켜줄 수 있을까.


손자 정한 씨와 할머니의 이야기는 68회 EBS1 메디컬다큐 7요일-내 딸의 홀로서기(소두증,알츠하이머) 편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