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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마리아 선생을 심문하던 일본인 검사가 눈시울 붉히며 한 말

오늘(18일)은 일본에 당한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김마리아 선생이 태어난 날이다.

인사이트(좌) 국가보훈처, (우) 국사편찬위원회


[인사이트] 심연주 기자 =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서 목숨을 바쳤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있다.


오늘(18일)은 바로 그중 한 명인 김마리아 선생이 태어난 날이다.


지난 1892년 6월 18일, 황해도 장연군에서 태어난 김마리아 선생은 연동여학교를 다니면서 민족정신을 품게 됐다.


이후 일본에서 유학하던 중에 1919년 2.8 독립 선언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비밀리에 귀국해 활동을 시작했다.


3.1운동이 발발한 뒤에는 항일부녀단체 조직을 계획하다가 일본에 발각돼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됐다.


인사이트국사편찬위원회


5개월간의 고된 투옥 생활에도 김마리아 부인은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해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3.1운동에 참가하며 독립운동에 힘쓰던 오현주가 독립이 불투명해지자 친일파로 전향하면서 애국부인회를 일본 경찰에 밀고했다.


결국 다시 체포된 김마리아 선생은 끔찍한 고문을 당했지만, 단 한 순간도 독립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았다.


당시 김마리아 선생을 심문했던 일본 검사는 숱한 고문에도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그에게 감동했다.


"너는 영웅이다. 너보다도 너를 낳은 네 어머니가 더 영웅이다"


비록 조선인이었지만, 일본 검사는 진심으로 존경의 의미를 담아 그를 영웅이라 칭했다.


인사이트국가보훈처


김마리아 선생은 이후 끔찍한 고문으로 건강이 악화되자 병보석을 받아 입원 치료를 받았다.


이때도 일본의 감시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단체인 '근화회'를 조직했으며, 1933년에는 다시 조선으로 귀국해 항일 투쟁을 계속했다.


도마 안중근 선생은 이러한 김마리아 선생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김마리아 같은 여성 동지가 10명만 있었던들 한국은 독립이 됐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김마리아 선생은 고문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지난 1944년 3월 13일, 광복을 맞이하지 못한 채 순국했다.


비록 그토록 그리던 광복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지만, 김마리아 선생의 굳은 의지와 정신은 봄이 찾아온 이 땅에 함께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