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 위해 능력있는 신하는 80세까지 출근시킨 '악덕 고용주' 세종대왕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SBS '비밀의 문'


[인사이트] 황효정 기자 = "1431년, 황희가 관직에서 물러나기를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다"_「세종실록」


오늘날에도 위인으로 잘 알려진 영의정 황희는 죽기 전까지 사직을 청했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끝내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실제 조선왕조실록에는 다음과 같은 무수한 기록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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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2년, 황희가 고령을 이유로 사직하자 허락하지 않다"


"1435년, 영의정부사 황희가 전을 올려 노쇠함으로 사직하기를 청하니 이를 허락지 않다"


"1436년, 영의정 황희가 사직하나 윤허하지 아니하다"


"1438년, 영의정 황희가 사직을 청하니 허락지 않다"


"1439년, 영의정 황희가 사직할 것을 청하다. 황희의 사직을 반대하다"


"1443년, 영의정 황희가 연로함을 이유로 해면을 청하나 듣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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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환을 이유로 사직을 요청한 황희에게 세종은 되려 가마를 하사했다. 걷지 못하면 가마를 타서라도 출근하라는 뜻이었다. 


여든이 훨씬 넘도록 황희는 그 가마를 타고 출퇴근해야 했다. 


황희뿐 아니다. 조말생의 경우, 23년간 지속해서 상소를 올리며 그만두고 싶어 했지만 세종은 23년간 허락지 않았다.


정인지는 모친 삼년상을 핑계로 상소를 올리고 낙향하려 했다. 세종은 법을 바꿔 정인지를 데려왔다.


세종대왕은 요샛말로 치면 '악덕 고용주'였다. 세종 집권 시기 신하들은 마음대로 은퇴할 수 없었다. 은퇴뿐일까. 퇴근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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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근무하던 신하 신숙주를 발견한 세종이 자신의 곤룡포를 벗어서 덮어줬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좋게 보면 마마의 은덕이지만, 사실 신숙주는 '옷이고 뭐고' 퇴근이나 시켜달라고 하고 싶지 않았을까.


세종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백성을 위해 일하는 관리들이 힘들고 괴로워야 그만큼 민초가 편안할 수 있는 법이다. 


다만 신하 된 입장에서는 고됐을 것도 분명하다.


내려오는 설에 따르면 훈민정음 반포식 때 축하 잔치 자리에 참석한 집현전 학자들은 절반에 그쳤다고 한다. 


대부분이 살인적인 업무에 시달리다 결국 병석에 드러누웠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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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덕분에 조선의 백성들은 한글을 쓸 수 있게 됐다. 500년 뒤 대한민국의 국민들도 쓰고 있다.


세종은 역사상 최초로 출산 휴가 제도를 도입하고, 노인에게는 쌀을 주고, 고아에게는 입양 가정을 찾아주고, 장애인 지원 정책을 펴고, 민심을 위해 투표를 실시하고, 왕가 토지를 나눠줬다.


스승의 날이기도 한 오늘(15일)은 세종대왕 탄신일이다. 


한민족 역사상 가장 찬란한 시대를 가꿨던 성군 세종대왕. 그 이면에는 백성을 위한 세종과 신하들의 노고가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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