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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전 오늘은 종로경찰서에 '폭탄 투척'한 김상옥 의사가 순국한 날입니다"

지금으로부터 95년 전인 1923년 1월 22일은 일제강점기 의열단원으로 활동하며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했던 김상옥 의사가 순국한 날이다.

인사이트국가보훈처


[인사이트] 장영훈 기자 = "생사가 이번 거사에 달렸소. 만약 실패하면 내세에서나 봅시다. 나는 자결하여 뜻을 지킬지언정 적의 포로가 되지는 않겠소..."


지금으로부터 95년 전인 1923년 1월 22일은 일제강점기 의열단원으로 활동하며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했던 김상옥 의사가 순국한 날이다.


1890년 가난한 서울의 한 가정에서 4남매 중 2남으로 태어난 김상옥 의사는 공장 직공과 말발굽 제조 직공 등을 하며 가계 일을 도왔다.


1919년에는 3·1 운동을 겪으면서 독립운동에 고취된 김상옥 의사는 국산품 장려운동과 항일전단 제작에 나섰다.


인사이트연합뉴스


또 항일지하신문을 발행하다가 체포돼 40여일간 갖은 고문을 당하는 등 평화 독립운동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김상옥 의사는 이후 무력투쟁을 하기로 결심하고 1920년 4월 김동순, 윤익중, 서대순 등과 비밀결사 암살단을 조직했다.


당시 조선 총독을 비롯한 일제 고관의 살해와 기관 파괴 등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거사 하루 전날 한훈과 김동순 등이 체포되면서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김상옥 의사는 의열투쟁 의지를 굽히지 않고 중국 상하이로 옮겨 의열단에 가입해 서울 종로경찰서 폭파를 준비했다.


인사이트연합뉴스


그리고 1923년 1월 12일 김상옥 의사는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했다. 거사를 마친 김상옥 의사는 정확한 사격술로 포위망을 뚫고 피해다녔지만 1923년 1월 22일 수백명의 일본 경찰이 은신처를 포위했다.


김상옥 의사는 양손에 권총을 들고 인근 지붕을 넘나들며 수백 명과 접전을 벌였지만 총알이 다 떨어졌고 마지막 한 발은 자결하는데 사용함으로서 33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평생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감상옥 의사는 가족들이 시신을 수습할 당시 그의 몸에 남은 총상은 11개나 됐다고 한다.


한편 정부에서는 김상옥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인사이트연합뉴스


"오늘은 김상옥 의사가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날입니다"평화적인 방법의 독립운동이 갖는 한계를 절감한 그는 무력 투쟁에 의한 독립 쟁취를 꿈꾸게 됐다.


조국 위해 '기꺼이' 목숨 바친 독립운동가 9인이 남긴 마지막 명언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다. 지금의 나라면 당연하지만 또 당연하지 않은 이 일을 당연하게 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