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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못해서 이번 '추석'도 고향에 가지 못합니다"

1년 넘게 취준생 생활을 하는 친구는 추석 같은 명절 때 고향인 부산에 내려간 적이 없다며 하소연했다.

인사이트tvN '미생'


[인사이트] 장형인 기자 = "공채 탈락 후 친척들 볼 면목이 없어서 이번 추석도 취업 특강이나 들어야해..." 


상반기 공채 시즌을 허무하게 넘긴 취준생 친구가 커피를 마시다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1년 넘게 취준생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친구는 추석 같은 명절 때 고향인 부산에 내려간 적이 없다며 하소연했다.


"취업 준비는 제대로 하고 있냐", "서류는 어디 붙었냐", "다른 애들은 취업도 하고 결혼도 한다던데"라는 친척들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서다.

 

인사이트파고다 어학원


한국 사회에서 명절날 '신(新) 명절 증후군'을 호소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신 명절 증후군'이란 취업 대란이나 결혼 문제로 집안 어른에게 '훈수'를 들어야 하는 젊은 세대들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말한다.


추석 명절이 되면 강남과 종로에 있는 대형 학원가에는 이색 풍경이 벌어진다. 


취준생들을 위한 취업 특강, 취업 스터디 장소 제공 등 학원은 이른바 '명절 대피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명절 대피소를 찾는 이들은 취준생 뿐만이 아니다. 고교생은 독서실로 직장인은 휴일 당번을 자처하며 직장으로 가기도 해 가족 친지들을 피해 자신만의 '명절 대피소'를 찾는다.


인사이트YTN 뉴스


우리나라의 대표적 명절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추석. 어쩌다 젊은 세대들이 명절 대피소를 찾으며 기피하는 날이 됐을까.


여기에는 한국 사회 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성과주의', '결과 지상주의'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짧은 기간 빠른 성장을 이뤄낸 한국 사회는 전통 윤리체계가 사라지면서 성과와 결과만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만연해졌다.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과거 유교 이념을 중시했던 조상들이 마땅히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가 그것이다. 


성인이 되고(冠), 혼례를 치르고(婚), 죽음을 맞이하고(喪), 제사를 지내는(祭) '관혼상제'는 조상들이 인생의 길목에서 꼭 지켜야 하는 의례였다. 


그런데 현대사회로 접어든 통과의례는 대입, 취업, 결혼, 출산 등 현대 젊은 세대들이 남들에게 증명해내야 하는 '사회적 통과의례'로 변질됐다. 


인사이트

영화 '고령화 가족'


요즘 청년들은 하루하루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충고와 조언은 꼭 필요할지도 모른다. 


다만 명절 연휴에 잠시 안식을 얻으려고 '먼길' 달려온 청년들에게 어른들의 차가운 '훈수'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듯 싶다.  


젊은 세대의 무거운 '짐'을 덜어줄 수 없다면 그들을 향한 비난과 훈수는 잠시 접어두자.


"남들은 취업 했는데 왜 너는 못 했냐"는 식의 비판이 아닌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는 배려가 필요하다. 


젊은 세대들이 사회적 통과 의례가 아닌 자신만의 '인생 의례'를 만들어갈 때를 덤덤히 기다려주며 지켜봐주는 것. 그거면 된다.


내년 설 명절에는 친구에게서 "취업 했으니 선물 많이 사들고 고향에 내려간다"는 자랑을 들었을면 좋겠다.


명절에는 떨어진 가족이 모두 모여 행복한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장형인 기자 hyungin@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