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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베트남전, 아들은 대청해전 참전한 참전용사 가족

대청해전에 참전했던 박 상사는 인터뷰에서 "아들이 전투기를 조종하는 공군 장교가 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인사이트(왼) 대청해전에 참전했던 아들 박웅태 상사, (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아버지 박귀선 씨 / 뉴시스


[뉴시스] 류형근 기자 = 아버지는 베트남전, 아들은 2009년 대청해전에서 전과를 세운 '부자(父子) 참전용사'가 호국보훈의 달인 6월 주목받고 있다.


해군 제3함대사령부는 대청해전에서 전과를 세운 박웅태(38) 상사의 아버지가 베트남전에 참전한 박귀선(73) 씨로 확인돼 대를 이은 참전용사가 됐다고 6일 밝혔다.


박 상사는 2009년 11월 10일 대청도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해전에 참전했다. 북한 경비정의 조준사격에 맞서 해군 고속정이 대응사격을 했다. 북한 경비정 1척이 반파됐으며 해군은 경미한 피해를 입었다.


당시 박 상사는 2함대 328호정 조타장으로 근무하며 북방한계선(NLL) 사수, 불법 중국어선 퇴거 작전 등을 수행하고 있었다.


임무 교대를 앞둔 시점에서 긴급 출항을 알리는 신호와 함께 전투배치 지시가 떨어지자 박 상사는 "현재 적정 NLL로 접근 중. 정 총원은 전투배치에 철저히 할 것. 총원 전투배치라는 방송을 했다"고 기억했다.


이어 "적정 마스트에 펄럭이는 북한 해군기와 밝은 오렌지색 방탄복을 입은 병사들이 기민하게 움직이는 것을 발견함과 동시에 교전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박 상사는 "포탄 소리, 붉은색 예광탄이 고속정 옆을 통과하는 것을 보며 '이게 전쟁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두려웠는데 편대장과 정장 등이 훈련할 때처럼 기민하게 움직이며 대응하는 모습을 보고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함정 내 통신기기가 고장나자 갑전병이 비상 전령 요원이 돼 포술장과 사통장의 통신을 전달하는 것을 보고 전우를 믿고 각자의 임무에서 최선을 다하면 승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전투가 끝나고 함정 내 인원 이상 유무 보고에서 '이상 없습니다'라는 보고가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며 "소리를 지르며 전우들과 눈물을 흘렸었다"고 회상했다.


박 상사가 총탄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베트남전 참전 영향도 컸다.


아버지 박귀선 씨는 1972년 6월 백마부대 무전병으로 베트남전에 파병됐으며 특수전 임무에 투입돼 10개월간 임무를 수행한 뒤 1973년 3월께 복귀했다.


박귀선씨는 당시 전투를 일기장에 상세하게 기록했으며 이를 읽은 박 상사는 군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박귀선씨는 일기장에 "죽기를 각오한 수색 특공대 10명에 자원했다. 적진을 향해 들어가면서 수색작전을 했고 어린이가 놀라 품에 안겼었다"고 썼다.


또 일기에 "전우들의 이름을 작성하며 힘든 시간을 버티고 이겨냈다"고 밝혔다.


박 상사는 아버지 일기장을 보며 용감한 군인을 꿈꿨고 완도 해상에서 펼쳐진 장보고 축제의 거대한 함정에 매료돼 해군이 됐다.


박 상사는 "완도 장보고 축제에서 봤던 하얀 해군 정복과 함정 내부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아버지도 일기장에 '전쟁에서 나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옆에 있는 전우'라고 작성했고 실제 전투를 겪으면서 실감했다"며 "전투를 경험하니까 매일 반복하는 훈련의 이유를 알게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들도 전투기를 조종하는 공군 장교가 되고 싶어 한다"며 "아버지는 육군, 저는 해군, 아들이 공군에서 복무하면 3대가 육해공을 지키는 용사가 되는 것 아니겠느냐"며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