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이 부끄럽다"...우크라이나 침공한 푸틴 공개 저격하며 사표 던진 러시아 외교관

인사이트푸틴 비판하며 사표 던진 러시아 외교관 보리스 본다레프 /  BBC


[뉴시스] 신정원 김태규 기자 = 스위스 제네바 주재 러시아 중견 외교관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침략 전쟁'이라며 강도 높은 비판하면서 사임했다고 뉴욕타임스(NYT), CNN, BBC, 가디언 등 외신이 23일(현지시간) 일제히 보도했다.


유엔에 근무하던 중견 외교관의 자진 사퇴가 러시아 공직사회 내에서 푸틴의 전쟁을 반대하는 하나의 강력한 흐름을 형성할 것인지, 아니면 20년 베테랑 외교관 개인의 양심 고백에서 그칠 것인지 주목된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보리스 본다레프 유엔 주재 러시아대표부 고문은 이날 스위스 제네바 유엔에 있는 동료들에게 보낸 서한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외교 경력 20년 동안 (러시아) 외교 정책의 다른 방향 전환을 봐왔지만 올해 2월24일 만큼 조국이 부끄러웠던 적은 없었다"면서 직을 내려놓는다고 밝혔다. 2월24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한 날짜다.


그는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그리고 사실상 서방 세계 전체를 상대로 일으킨 '침략 전쟁(The aggressive war)'은 우크라이나 국민에 대한 범죄일 뿐만 아니라 아마도 러시아 국민들에 대해서도 가장 심각한 범죄일 것"이라고 질타했다.


푸틴 대통령과 지도부를 겨냥한 통렬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특히 자신의 직속 상관인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 장관 등 러시아 외무부 인사들을 '선전 선동가'로 규정하며 그들을 향한 날선 발언을 쏟아냈다.


본다레프는 "이 전쟁을 구상한 사람들은 오직 한 가지만 원한다. 영원히 권좌에 남아 호화롭고 무미건조한 궁전에서 살면서 러시아 해군 전체에 필적하는 톤(t)수와 비용이 드는 요트를 타고 항해하고 무제한의 권력과 완전한 면책을 누리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그들은 이것을 쥐기 위해 얼마든지 많은 생명을 희생할 용의가 있다"며 "이 때문에 이미 수천 명의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이 목숨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또 라브로프 외무장관 등을 향해선 "많은 동료들이 전문적이고 교육적인 지식인에서 상충되는 진술을 끊임 없이 발표하고 핵무기로 세계를 위협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며 "오늘날 러시아 외무부의 임무는 외교가 아닌 전쟁 선동과 거짓말, 증오에 관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본다레프는 "지난 20년 동안 (러시아)외무부 업무에서 거짓말 수준과 비전문적인 일처리들이 점점 늘어나게 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은 그야말로 파국을 초래할(catastrophic) 수준이 됐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편파적인 정보, 공정한 분석, 냉철한 예측 대신 1930년대 소련 신문들에 등장할 법한 진부한 선전 정신들로 가득해 있다"고 힐난했다.


본다레프는 NYT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켜봐야만 했던 자신의 심경과 사퇴를 결심하게 된 배경에 관해서도 비교적 자세히 토로했다.


인사이트보리스 본다레프가 발표한 성명문 / Twitter


그는 "우리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유혈 공격을 시작한 지 이미 3개월이 지났다"며 "그들이(우크라이나인들이) 모든 것을 잃어갈 때 내 마음과 정신을 온전히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침공했을 당시인 3개월 전에 사퇴했어야 했지만, 가족과의 문제를 마무리 짓고 내 결심을 끌어모으는데 시간이 필요해 사퇴가 늦어졌다"고 전했다.


그는 AP통신 인터뷰에선 사임을 확인했지만 제네바를 떠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그의 사표 제출 사실을 직접 확인한 매체는 NYT가 유일하다. NYT는 본다레프가 동료 외교관에게 보낸 이메일을 확인했으며 정확한 신원 확인을 위해 그의 여권 사본도 제출 받았다고 설명했다.


본다레프는 군비통제, 군축 및 비확산 분야 전문가로 2019년부터 현재 임무를 지속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유엔 홈페이지를 통해 러시아 대표부 고문으로 등록돼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NYT는 보도했다.


다만 러시아 당국은 그의 사임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러시아가 최근 개정한 법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특별 군사 작전'이 아닌 '전쟁'을 부르는 것을 포함해 '러시아군에 대한 허위정보를 퍼뜨리는' 행위는 처벌 받을 수 있다.


미 국무부는 본다레프의 사임과 관련해 "크렘린의 선전선동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벌이고 있는 일들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 러시아인들이 있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푸틴에 맞설 용의가 있으며, 압제자와 맞서러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는 논평을 냈다고 CNN은 보도했다.


본다레프 외에도 지난 3월에는 아나톨리 추바이스 러시아 대통령 특별대표 역시 사임했다. 러시아를 떠나 터키에 체류 중인 알려졌다. 1990년대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경제 개혁을 주도했으며, 푸틴 대통령 집권 후에는 국영 기술회사 로스나노를 이끌었고 2020년 12월4일부터 대통령 특별대표직을 맡았던 인물이다.


옛 소련 붕괴 후 러시아 초대 외무장관을 역임했던 안드레이 코지레프 전 외무장관도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후배 외무관들의 일괄 사퇴를 촉구한 바 있다.


코지레프 전 장관은 우크라이나 침공 일주일 여만인 지난 3월 초 트위터를 통해 "러시아 외교관 여러분, 당신들은 전문가이지 값 싼 선전가가 아니다"며 "나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항의해) 모든 외교관들에게 사임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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