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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노동자들 데리고 감자탕집 간 청년 전태일이 밥 '공짜'로 준다고 해도 거절한 이유

그는 없는 돈에도 어린 견습공들을 식당에 데려가 따뜻한 밥 한 끼를 사주곤 했다.

인사이트YouTube 'EBSCulture (EBS 교양)'


[인사이트] 김소영 기자 = 청년 전태일은 자신의 처지보다 하루 종일 공장에서 젊음을 희생하면서도 푼돈을 버는 여공들의 참담한 삶에 더욱 분노를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는 평소 어린 여공들(견습공)을 데리고 동대문 평화시장의 모녀식당에 자주 방문했다.


감자탕이나 반계탕 등을 파는 곳이었는데, 그는 없는 돈에도 어린 견습공들을 이곳에 데려와 따뜻한 밥 한 끼를 사주곤 했다.


주인아주머니는 아직도 이타적이었던 청년 전태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인사이트YouTube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인사이트사진=인사이트


아주머니는 전태일을 이렇게 기억했다.


"시다들 데리고 와서 자기는 안 먹고 애들 사줄 때도 있었어. 그래서 내가 한 그릇 슬쩍 더 주니까 끝까지 배부르다고 안 먹어. 그래서 난 정말 밥 먹은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사람도 저녁 먹은 게 아니었어요. 시다 애들한테는 자기는 밥 먹었다고 그랬는데 준다고 덥석 받아먹으면 애들 무안해 할까봐 그랬다는 거야, 나중에...그래서 내가, 에이 바보야, 그랬거든" - 전태일 평전 초판 中


전태일은 어린 견습공들에게 자신은 이미 밥을 먹어 배부르다 거짓말을 하고 감자탕을 사줬었다. 자신의 배까지 채우기엔 돈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리라.


인사이트YouTube 'EBSCulture (EBS 교양)'


그런데 이게 탄로 나면 견습공들이 미안함을 느낄까 봐, 그는 공짜 밥도 거절했던 것이다.


청년 전태일의 이 같은 일화는 6·10민주 항쟁 기념일​​을 맞아 재조명됐다.


1970년 11월,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 준수 등 노동자 권리 보장을 외치며 분신해 세상을 떠났다. 그의 선택은 마지막까지 동료들을 위한 것이었다. 


이후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된 그는 6월 민주 항쟁 기념일이 돌아올 때마다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인물로 함께 거론되며 재조명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