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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 후손, 한달 80만원 받는 '청소일' 하며 어렵게 생활한다

독립운동가였던 유관순 열사의 후손이 여전히 어렵게 사는 것으로 알려진다.

인사이트(좌) 유관순 열사, (우) 8·15 광복, 일본 패망 소식에 거리로 나온 시민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사이트] 전준강 기자 = 102년 전 1919년 3월 1일, 이 땅에서는 일제의 폭압에 맞서는 이들의 "대한독립 만세" 소리가 울려퍼졌다.


독립운동가는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 나서서 빼앗긴 주권을 찾아오려 했다.


이 노력은 쌓이고 쌓여 마침내 1945년 8월 15일 조국 광복의 초석이 됐다.


조국 독립을 위해 여러 사람이 힘을 썼고, 그 중에는 유관순 열사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유관순 열사는 1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고향 천안 독립 운동의 선봉장 역할을 수행했다.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긴 일본 경찰은 서대문 형무소로 유 열사를 끌고가 모진 고문을 가했다.


인사이트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


모진 고문에도 불구, 항복하라는 일제의 압력에 굴하지 않았던 유 열사는 끝내 조국 광복을 모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유 열사는 죽음 이후에도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추대돼 지금까지도 대표적인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의 후손의 삶은 순탄치 못한 상황이다.


2년 전 매체 뉴시스가 전한 바에 따르면 유 열사의 후손인 70대 여성은 청소부 일을 하며 겨우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2019년 기준 월급은 고작 80만~90만 수준이었다.


인사이트 / 사진=인사이트사진=인사이트


인사이트 / 사진=인사이트사진=인사이트


당시 이 후손은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는 걸 극구 꺼렸다고 한다. 유 열사에 대한 누가 될까봐서였다.


유 열사의 조카손녀와 조카도 매점 직원, 광복회 건물 관리인으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한편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거주 독립유공자 가족 중 74.2%가 월소득 200만원 이하를 기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민들은 정부가 세금을 낭비하는 분야를 대폭 정리해 독립유공자·후손들의 처우개선에 힘써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