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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후유증' 너무 힘들어 '사랑했던 기억' 모두 지우고 싶었던 대학생의 대숲 글

페이스북 페이지 '고려대학교 대나무숲'에 공개된 이별 후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은 글이 누리꾼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했다.

인사이트YouTube '콬TV'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사랑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했던가. 이별한 이에게는 천장의 형광등 불빛과 TV 속 노랫말도 아픈 러브스토리의 연출이 된다. 


이별 후의 마음이 상처 나고 벗겨진 탓에 그 어떤 것이 닿더라도 고통은 이루 말하기 힘들다. 


고려대학교에 재학 중인 A씨도 이별 후 찾아온 이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눈물을 흘렸다. 


그는 "이 새삼스러운 울음 갓난애마냥 몸이 아파서 잠을 설친 탓일 거다. 네가 그리워서가 아니라, 혼자 아픈 게 서럽고 옆에 누워 있었으면 해서 운 거다"라고 애써 눈물의 이유를 돌렸다. 


인사이트


인사이트YouTube '콬TV'


지난 6일 페이스북 페이지 '고려대학교 대나무숲'에 공개된 A씨의 글이 화제다. "그러니까, 나는 널 사랑한 적이 없다"로 시작한 이 글은 수많은 누리꾼의 눈시울을 적셨다. 


'사랑한 적이 없다'는 첫 문장에 의아스러움을 안고 글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A씨가 말하는 사랑의 참된 의미가 전해진다. 


그는 "예를 들면 네가 눈썹을 추켜올리고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는 표정 같은 게 좋았을 뿐이다. 내가 샌드위치 먹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미소 같은 게 괜찮았을 뿐이다"고 했다. 


사랑한 적 없다는 그의 글에는 전 연인과 함께했던 수많은 나날이 좋았을 뿐이고 괜찮았을 뿐인 일들로 정성스레 나열됐다. 


인사이트


인사이트YouTube '콬TV'


A씨가 말한 하나하나의 구체적인 '사랑'은 결국 사랑이었으나 이별 후 찾아온 고통은 사랑이 아니었다고 믿어야 할 지경에 이르게 할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 고통과 홀로 둥둥 떠 있는 듯한 기분에 A씨는 눈물을 흘렸다. 이 고통을 가시게 해줄 유일한 치료제는 이미 떠나버린 옛 연인, 그래서 그에게 적절한 치료제는 없다. 


A씨는 또다시 애써 외면해본다. "너는 더이상 내 치료제 역할을 못 한다. 이제 별다른 효험이 없을 거다"라고.


하지만 두 사람이 나눈 사랑은 쉽게 잊힐리 없다. 둘만이 아는 추억이 밤마다 A씨 방을 찾아오고, 그때마다 사랑이 아니었다고 외어보지만 금세 까먹는다. 


인사이트


인사이트YouTube '콬TV'


쿨한 척, 아무 일도 아닌 척, 하얗고 후련한 마음으로 옛 연인을 털어보려 하지만 A씨의 그 하얀 마음을 물들이는 건 역시 옛 기억이다. 


동해로 떠났을 때 두 사람을 비추던 먼바다의 쪽빛, 봄날 애기능의 붉은빛, 전 연인이 입던 셔츠의 모과 빛, 그리고 믿기 힘들 정도로 사랑했던 나날들의 햇빛이 섞인다. 


그리고 그 끝을 채운 건 눈물 자국이었다. 


가슴을 절절하게 만드는 A씨의 글은 11일 현재 좋아요 4.6천, 댓글 1.3천, 공유 1.3천을 기록하고 있다. 


아래는 A씨 글의 전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널 사랑한 적이 없다.


예를 들면 네가 눈썹을 추켜올리고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는 표정 같은 게 좋았을 뿐이다. 네가 천장을 보고 똑바로 누워 잘 때 네 팔뚝을 내 두 팔로 끌어안으면 느껴지는 단단함과 포근함 그사이 어딘가의 느낌 따위나 좋아했다. 메뉴를 고를 때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음식부터 외치는 능청스러운 목소리가 좋았던 것뿐이다. 내가 다른 이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늘 똑같은 패턴으로 해대는, 질투 아닌 질투가 묻은 대사 같은 거나 좋아했다. 내 맨얼굴을 만지작거리는 온도나 내가 샌드위치 먹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미소 같은 게 괜찮았을 뿐이다. 안아 주기를 바랄 때마다 취하는 자세 같은 게 귀엽기는 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나눠주지 않는 사소한 일상과 고민을 내게만 전해주는 네가 나쁘지 않았을 뿐이다. 그냥 이런 평범한 것들 따위가 좋았던 거지 널 사랑하진 않았다.


이렇게 구체적이고 비밀스러운 시간들마저 사랑이 아니었다고 믿어야 할 지경까지 왔다. 결국 우리 사이에 '이 지경'이라는 말 하나 정도만 남겨졌구나. 자기도 모르는 새 내 손을 스르르 놓은 네가 짜증 나서, 그 덕에 또다시 홀로 둥둥 떠 있게 된 내가 불쌍해서 어젯밤엔 모처럼 울었다.


사실 이 새삼스러운 울음은 갓난애마냥 몸이 아파서 잠을 설친 탓일 거다. 네가 그리워서가 아니라, 혼자 아픈 게 서럽고 옆에 누가 있었으면 해서 운 거다. 말하자면 신체의 통증을 낫게 할 정신적 치료제를 찾는 본능, 그리고 결국 못 찾아서 부리는 생떼. 분명한 건 너는 더이상 내 치료제 역할을 못 한다. 이젠 별다른 효험이 없을 거다. 내가 찾고 있는 건 네가 아니라 그냥 곁에 있어 줄 사람일 거다. 그러니까, 나는 널 사랑한 적도 없고 네가 그립지도 않다. 난 굳게 믿고 있다.


그런데 이 믿음이 제멋대로 옅어지고 있다. 단호하게 까맣던 내 마음의 명도가 낮아지고 있다. 회색빛으로, 흰빛으로 변해가고 있다. 나는 부탁한 적이 없는데 시간이 날 대신해서 자꾸만 너를 용서한다. 날 시험하려는지, 우리만 아는 추억이 밤마다 내 방으로 걸어 들어온다. 사랑이 아니었다고 꾸역꾸역 외우고 있는데 멍청한 나는 계속 까먹는다.


이렇게 된 이상 단호하고 까만 마음은 포기다. 그저 하얗고 후련한 마음으로 널 털어버려야지. 옅어질 대로 옅어진 창백한 마음으로 너도 지워버릴 거다. 그런데 하얘져 가는 내 마음에, 스멀스멀 그날 밤 동해바다의 쪽빛이 섞인다. 봄날 애기능의 붉은 빛이 섞인다. 네가 입던 셔츠의 모과 빛이 섞인다. 믿기 힘들 정도로 사랑했던, 그리고 계속 그럴 자신이 있었던 날들의 햇빛이 섞인다.


쿨한 척 하얘지려던 마음이 이런저런 색깔들로 지저분하게 물든다. 화려한 기억들이 무채색 이별을 계속 방해한다. 마무리 얼룩은 언제나 눈물자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