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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임금 고종의 '전화 한 통'으로 가까스로 살아남아 역사를 바꾼 뜻밖의 인물

황해도 치하포 나루터에서 칼을 지닌 일본인을 살해하고 사형선고를 받았던 한 청년은 고종의 밀명으로 살아남아 역사에 길이 남게 됐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YouTube 'EBSCulture (EBS 교양)'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1896년 8월 26일, 인천에 있는 한 감옥에 전화벨이 울려 퍼졌다. 


전화를 건 이는 다름 아닌 조선의 임금 '고종'이었다. 


고종은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한 조선인 청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전화를 걸어 청년의 처형을 중지하라고 전했다.


이로 인해 죽음 직전까지 갔던 청년은 가까스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고종은 어찌 알지도 못하는 이 청년의 목숨을 살린 것일까.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대장 김창수'


1985년 10월 8일, 조선 주재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를 중심으로 한 일본인들이 경복궁에 침입해 명성황후와 궁궐에 있던 수많은 사람을 집단 살해했다. '을미사변'으로 알려진 사건이다. 


당시 황해도에 살고 있던 사형수 청년은 이에 크게 분개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청년이 주막에서 국밥 한 숟갈을 뜨고 있을 때 수상한 남성이 주막으로 찾아왔다. 단발을 하고 한복을 입고 있었으나 그는 분명 일본인이었다. 


많은 일본인이 자신들의 복장으로 길거리를 활보하는데 왜 저 사람은 굳이 한복을 입고 있었을까, 청년이 가진 의문이었다. 


인사이트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YouTube 'EBSCulture (EBS 교양)'


그리고 청년의 눈에 일본인이 품에 끼고 있는 칼집이 보였다. 청년은 저 일본인이 명성황후를 살해한 자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혹여 범인이 아니더라도 칼을 차고 숨어다니는 저 일본인을 처단하는 것이 나라의 원수를 갚는 일이라 여겼다. 


청년은 일본인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칼까지 들고 조선인으로 위장하고 있는 것이오?"

 

청년의 말에 일본인은 갑자기 칼을 빼 들었고 두 사람의 치열한 다툼이 이어졌다. 그리고 청년은 그 일본인을 살해했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영화 '대장 김창수'


청년은 일본인을 살해한 혐의로 감옥에 갇혔는데 뒤늦게 이 모든 소식을 들은 고종이 직접 전화를 걸어 사형을 멈추게 한 것이다. 


목숨을 건진 청년의 이름은 김창수로 지금의 사람들은 그를 '백범 김구'로 기억한다. 


김구 선생은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었고, 이 임시정부는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의 토대가 됐다. 


고종의 전화 한 통은 조선의 역사,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역사를 뒤바꾼 일이었다. 


인사이트백범 김구 / 국가보훈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