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하게 '일본 왕족' 처단한 24살 독립운동가 조명하 의사가 사형당하기 전 남긴 말

인사이트조명하 의사 / EBS 클립뱅크


[인사이트] 전준강 기자 = 지금으로부터 약 92년 전인 1928년 10월 10일.


어리다면 어리고, 충분한 나이라면 충분한 나이인 24살의 청년 조명하 의사는 대만에서 일제에 사형을 당했다.


황족을 위해 했다는 게 그에게 적용된 죄목이었다.


그렇다 그는 일본 왕족을 처단했다. 독립운동가 가운데 유일하게 일본 왕족 처단에 성공한 인물이 바로 조명하 의사다.


조 의사는 115년 전 오늘인 1905년 4월 8일 태어났다. 그는 세상을 알기 전부터 나라 잃은 슬픔을 알아버렸다. 독립운동의 뜻을 품으며 지냈던 조 의사는 일본으로 건너가 공부했다.


'아키가와 도미오'라는 가명을 쓰며 공부했지만 일본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나가기는 어려웠다.


인사이트구니노미야 구니히코 / wikipedia


인사이트당시 의거가 일어났던 대만 대중 도서관 / EBS 클립뱅크


1927년, 상해 임시정부에서 보다 더 큰 뜻을 펼치기 위해 그곳으로 향했다. 비용이 만만치 않아 대만에 잠시 머무르며 일을 했다. 노동의 고통 속에서도 틈틈이 무술을 연마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하늘이 그의 뜻을 품어준 걸까. 상해로 가지 않았던 그에게 독립운동에 힘을 보탤 기회가 찾아왔다.


1928년 5월 14일 일왕의 장인 구니노미야가 대만으로 온 것. 대만 주둔 일본군을 검열하는 그의 목숨을 빼앗아야겠다고 조 의사는 결심했다.


조 의사는 구니노미야 환영 행사가 열리던 곳에서 기회를 노렸다. 마침내 구니노미야가 도착해 차에서 내리던 순간, 조 의사는 독을 묻힌 검을 날렸다.


인사이트조명하 의거 사건을 보도한 일본 신문 / YouTube 'KTV 대한뉴스'


독검은 구니노미야의 목을 할퀸 뒤 그 뒤에 있던 운전수 손에 꽂혔다. 안타깝게도 구니노미야는 즉사를 피했다.


조 의사는 현장에 있던 일본군에 붙잡혔다.


"대한 독립 만세"


조 의사는 죽음 만이 미래가 된 상황에서도 나라에 충성을 외쳤다.


인사이트EBS '다큐프라임'


결국 당연하게도 조 의사는 사형을 선고당했다. 대만의 한 사형장에서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을 잃지 않았다.


"대한의 원수를 갚았노라"는 말을 남기며 삶을 마감했다. 또한 "조국 광복을 못 본 채 죽는 게 한스럽다. 저 제상에서도 독립운동은 계속 하리라"는 말을 일제에 날렸다.


그의 뜻은 온전히 남아 일본 왕족의 숨통을 끊었다. 조 의사의 독검에 의해 목에 상처가 났던 구니노미야는 '패혈증'에 걸려 죽었다. 

[저작권자 ⓒ인사이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여러분의 제보가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세상을 건강하게 변화시키는 인사이트의 수많은

기사들은 여러분의 제보로부터 시작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