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천안함 피격 당시 군의관이었던 의사가 증언한 처참했던 배 안 상황

인사이트의사 이태인(38) 씨는 2010년 3월26일 천안함 피격 당시 군의관으로 현장에 투입됐다 / 뉴시스


[서울=뉴시스] 이창환 기자 = "어떤 병사는 티셔츠를 벗다가 이 상태(양 손을 옷의 목 주변으로 넣는 모습)로 생을 마감한 듯 보였어요…정말 처참했습니다."


26일로 10주기를 맞는 '천안함 침몰'. 지난 25일 오후 서울 성북구의 한 병원에서 만난 의사 이태인(38)씨는 10년 전 이 사건 당시 현장에 투입된 군의관이었다.


2008~2011년 군의관으로 군복무를 한 이씨는, 2010년 3월에는 경남 진해 소재 평택함정(현재 퇴역)에 배치돼 근무를 했다. 천안함이 침몰된 당일인 그해 3월26일 오후, 동료와 함께 부대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던 그는 '군함이 어뢰에 맞아 침몰했다'는 소식을 듣고 긴급 출항한 평택함의 유일한 군의관이었다고 한다.


"여느 때처럼 일상생활을 하던 분들이 그대로 돌아가신 장면을 목격하니 이질감이 들고 안타까웠다"며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평소 해상에서 비행기가 추락하는 등 사고 현장 투입된 경력이 있는 그였지만 "이번엔 6개월이 걸릴 수도 있고, 기약이 없다"는 말을 전해듣고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온몸으로 느꼈다고 한다.


만으로 하루~이틀 가량 배를 타고 사고 현장에 도착한 그는 "119소속 잠수팀, 민간 잠수부부터 연예인까지 와서 '자기가 해보겠다'고 자원하는 상황이었다"며 "당시엔 배가 침몰된 위치를 찾는 상황이여서,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크게 없었지만, 처음엔 의사가 나 혼자였기 때문에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이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인사이트지난 2010년 3월 서해 백령도 서남방 1.8㎞ 해상에서 침몰한 1200t급 초계함 천안함의 선수 부분이 수면위로 보이고 있는 가운데 해경 함선이 주변을 지나고 있다. (사진=옹진군청 제공) / 뉴시스


이씨는 '잠수 감압 체임버'에서 잠수부들의 건강을 점검하는 역할을 맡았다. 감압 체임버란 해양 내부에 압축된 공기를 주입해 잠수 요원이 잠수했을 때와 비슷한 공기를 흡입할 수 있도록 압력을 조절하는 장치로, 급하게 수면으로 올라와 겪을 수 있는 잠수병을 치료한다.


이씨는 "시계가 1m도 안 되는 악조건 속에서 온몸으로 물살을 이겨내며 선체 수색·인양작업을 하다 보면 30분만 지나도 체력이 바닥난다"며 "동료들(3인1조, 2인1조 등)이 울면서 의식을 잃은 잠수부를 데려오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특히 이씨는 고(故) 한주호 준위를 살리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던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한 준위는 2010년 3월30일 서해 백령도에서 천안함 실종자 구조 작업을 하다가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며 실신,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씨는 "'의식 잃은 사람이 구조되고 있다'는 명령이 내려져 긴급히 가 보니 한 준위가 자발호흡도 없고 맥박도 잡히지 않는 상태였다"며 "당시 청해진, 광양함, 평택함 3개 함정에만 체임버가 있었는데 모두 꽉 찬 상태라 미군 구조함으로 이동해 2시간 넘게 심폐소생술을 했다. 하지만 끝내 사망선고가 내려졌다"고 떠올렸다.


이어 "온몸이 땀에 젖고 저랑 미군하고 돌아가면서 했다. 원래 심폐소생술이 30분 안팎이면 나온다,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2시간을 했죠. 그때 2시간인지도 몰랐다. 얼마 안 했다고 생각했는데 2시간이 지나 있었다"며, "구조 인력은 한정됐는데 계속 작업에 투입되다 보니, 잠수에도 회복시간이 있는데 그런 게 잘 지켜지기 어려웠던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천안함이 인양된 이후 그는 선체 내부에 들어가 시신들을 수습했다고 한다.


인사이트고(故) 한준호 준위 / 뉴시스


이씨는 "솔직한 마음으로 선체에 투입되기 전 스스로도 긴장됐지만, 나보다 10살가량 어린 의무병사에게는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만류도 했었다"며 "내부상황은 시신들이 곳곳에 널부러져 있고 갯벌 진흙이 허벅지까지 차 있는 등 생각보다 더 처참했다"고 말했다.


그는 "차고 짠 바닷물 탓에 시신들은 오히려 불지 않고 마네킹 같은 모습이었다"며 "화염으로 인한 상처보다 '펑' 터지는 충격으로 함정 철골 구조가 흉기가 되면서 신체가 절개된 외상을 입은 이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고 너무 안타까웠다"며 말끝을 흐렸다.


당시 외부에서 퍼지던 구조 '압박'과 온갖 '설'들로 현장 분위기가 침체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씨는 "전례가 없는 사고일뿐만 아니라 해군 특수전전단 해난구조전대(SSU), 해군 특수전여단(UDT) 대원들 등 작업에 투입된 많은 이들도 속도를 내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 없는 현실에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본인들은 목숨을 걸고 임하는데도 '왜 진척이 없느냐', '제대로 작업하는 거냐'는 말들이 여론·언론 등에서 나와 속상해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음모론들도 나왔지 않느냐, 물론 의문 제기는 있을 수 있겠지만 눈앞에 시급한 상황을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며 "너무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 구조대원들의 노력이 왜곡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표했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뉴시스


그러면서 "구조 현장에서 목숨을 건 이들의 노고에 대한 관심은 별로 크지 않은 것 같다"며 "재난 상황에선 '무언가 얻으려는' 정치색을 띄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유사 재난 상황인데, 현장에서 해결하려는 이들에게 응원이 필요한 때"라고 당부했다.


이날로 10주기를 맞는 '천안함 침몰'은 2010년 3월26일 오후 9시22분께 백령도 서남방 2.6㎞ 해상에서 경계 임무를 수행하던 천안함이 북한 잠수함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하면서 해군 장병 46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침몰 원인을 두고 당시 '선체노후화에 따른 피로파괴설', '암초로 인한 좌초' 등의 갖가지 '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국방부는 그 해 3월31일 민·군 합동조사단을 구성, 5월20일 천안함이 북한의 소형 잠수함정에서 발사된 어뢰에 침몰됐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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