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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행방불명자' 많은데 아직도 시신 발견 못 한 '끔찍한' 이유

광주 5·18 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된 사람들의 시신이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는 이유에 관한 증언이 나왔다.

인사이트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인사이트] 황효정 기자 = 광주광역시가 인정한 5·18 민주화운동 행방불명자는 83명이다.


행방불명자로 인정받지 못한 채 사라진 240여 명을 더하면 300명이 훨씬 넘는 수가 나온다.


39년이 지난 지금도 남은 가족들은 사랑하는 이의 뼈 한 조각이라도 발견되길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


여전히 발견되지 않고 있는 행방불명자들. 5·18 민주화운동이 있고 39년 만에, 바로 이 행방불명자의 시신을 발견할 수 없는 이유가 전해졌다.


지난 14일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5·18 당시 광주에서 미군 정보요원으로 일했던 김용장 씨와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인사이트


인사이트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보도에 따르면 전 주한미군 501정보여단 방첩 정보요원인 김씨는 당시 광주에서 미국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정보를 입수, 보고하는 일을 했다.


5·18이 있었던 그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날 김씨는 믿기 힘든 증언을 했다.


김씨는 계엄군의 무차별 집단 발포로 발생한 민간인 사상자 및 행방불명자 시신과 관련, "아무리 찾아봐도 안 나온다. 나올 리가 없다. 왜? 소각했으니까"라고 폭로했다.


김씨에 따르면 당시 시신들은 국군 광주통합병원으로 이송됐다. 국군병원의 보일러실이 개조됐고, 거기서 시신을 소각했다.


믿기 힘든 증언에 취재진은 "거기서 시신을 태운 것이 맞냐. 확인된 정보냐"고 재차 물었다. 김씨는 "(미국에) 보고한 정보"라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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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당시 5·18 시민군으로 활동했던 양기남 씨 또한 이날 매체에 "위생병 말을 들어보면 (국군병원) 보일러실이 5월 내내 하루 24시간 가동됐다고 하더라"고 증언했다.


위생병에 그러한 말을 전해 들은 양씨는 직접 병원 주위를 찾아갔다고 했다. 양씨는 "5월이면 우리가 장독을 열어놓을 땐데, 그때 사람들이 장독을 못 열었다더라. 재가 많이 날려서"라고 전했다.


정리하자면 국군병원 보일러실을 개조해 시신을 소각했으며, 1980년 5월 한 달 동안 24시간 보일러실을 돌렸다는 것.


이후 취재진은 현재 터만 남아있는 국군 광주통합병원 폐건물을 찾았다. 보일러실 한쪽에서 화덕 공간을 메워놓은 듯한 흔적이 포착됐다.


하지만 국군병원 당시 관계자는 이에 관해 인터뷰를 요청한 취재진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취재진은 이에 전문가를 현장으로 모셨다. '장례와 화장문화연구' 박태호 대표는 보일러실을 방문한 뒤 "의심할만한 공간이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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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한국인이지만 당시 미군에서 일을 했던 김씨는 현재 남태평양 피지에 거주하고 있다. 김씨가 직접 5·18 관련 증언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40여 년 만에 증언에 나선 김씨는 이날 증언을 한 이유에 관해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정보기관에서 근무하다 보면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 한국 언론기관을 저는 믿지 않습니다.


그래도 증인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광주에 대한 진상이 이루어져야지 우리가 만약에 죽고 나면 그 일을 누가 하겠는가.


지난 39년 동안에 제가 가지고 있는 십자가는 굉장히 크고 무거웠습니다..."


Naver TV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