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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범, 6살 때부터 심석희 정신 지배했을 가능성 크다"

수사가 진행 중인 '조재범 성폭행 사건'이 그루밍 성폭행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인사이트조재범 전 코치 / 뉴스1


[인사이트] 김서윤 기자 = 쇼트트랙 국가 대표 금메달리스트 심석희를 성폭행 한 조재범에 대해 "위계에 의한 전형적인 그루밍 성폭행이 아니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루밍 성폭력은 친분을 활용해 길들이고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행을 저지르는 것을 말한다. 주로 성에 대한 인식이 낮은 아동이나 청소년들이 피해자가 된다.


탁틴내일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범죄자는 상대에게 고민 상담을 해주거나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등 방식으로 경계심을 무너트린 뒤 신뢰를 얻고서 성범죄를 저지른다.


아이가 보호자와 떨어지는 상황을 만들어 의존성을 증폭시킨 뒤 자연스러운 신체접촉을 유도하는 것이다.


성폭행이 일어난 뒤에는 '주변에 알리겠다'는 등 협박과 회유로 성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인사이트조재범 전 코치 / 뉴스1


이 상담소가 지난 2014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 접수된 20세 미만 피해자의 성폭력 피해 상담 사례 78건을 분석한 결과 그루밍 성폭력은 43.9%에 달했다.


피해자는 14~16세 중학생이 44.1%로 가장 많았으며 피해는 장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발생됐다.


그루밍 성폭행이 일반 성폭행과 다른 점은 일반 성폭행의 경우 대체로 강제성이 드러나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즉각적으로 인지하지만 그루밍 성범죄의 경우 '길들여졌기에' 피해 사실을 바로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또한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인지하게 되더라도 가해자가 회유나 협박을 하면서 피해자의 입을 막기도 한다. 피해 기간은 그만큼 길어진다.


피해자는 점점 고립되고 두려움과 벗어날 수 없다는 무력함이 생겨 범죄자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Korea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조재범 성폭행 사건'이 그루밍 성폭행으로 의심받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는 주장이다.


심석희의 법률 대리인 법무법인 세종 측은 "조재범 전 코치는 상하관계에 따른 위력을 이용해 선수를 폭행하고 협박한 뒤 선수가 만17세였을 때부터 4년동안 상습적인 성폭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역시 "조 전 코치가 범행을 할 때마다 '운동을 계속할 생각이 없냐'고 협박했다"고 털어놨다.


심석희가 만 6세 때부터 십 수년간 조 전 코치의 지도를 받아왔고, 부모로부터 분리돼 생활해온 환경적 요인도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전형적인 그루밍 성폭력 수법이라고 주장할만한 근거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뉴스1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10일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꿈 많은 10대 선수가 자신의 선수생활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코치에게 저항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그루밍 성폭력은 보통 위계나 위력이 성립할 때 일어나지만 피해자는 자신도 모르게 가해자에게 정신적으로 종속돼 피해를 알아차리기 어렵다"고도 말했다.


그는 또 "오랜 기간 사제관계라는 점을 악용해 부모와 떨어져 합숙생활을 하는 심석희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정신을 지배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폭력은 곧 훈련 과정이라고 인식시키면서 폭력을 참게 한 뒤 성폭력 상황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의견을 냈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그루밍 성폭력이 늘고 있는 가운데 범죄 예방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현행법은 예방 보다는 사후 처벌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인사이트체육계 미투 /뉴스1


현행법상 그루밍 범죄를 처벌하는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도 문제점이다.


보통 강간죄는 형법 제297조에 따라 폭행 또는 협박으로 죄 입증성이 형성된다. 또 형법 제305조에 따라 만 13세 미만의 경우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는 폭행이나 협박이 없더라도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하지만 만 13세 미만의 미성년자에 대해서만 처벌 규정이 있어 13세 이상의 피해자인 경우 강제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처벌이 어렵다. 그루밍 범죄에 대한 처벌이 애매한 이유다.


그루밍 범죄의 경우 강제성을 부인할 증거들이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흔히 내놓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발언, 서로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 성폭행 시점 이후에도 피해자가 가해자를 만났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은 사례들이 많다.


현재 국회에서는 관련 법안 개정안이 계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정안은 '19세 이상 성인이 13세 이상 16세 미만 아동 청소년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해 간음이나 추행할 경우 처벌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그루밍 범죄를 대상으로 처벌하는 법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