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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 불타도 가부좌 자세 유지하며 편안히 눈 감은 '승려'의 죽기 전 마지막 모습

스님은 온몸이 타들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가부좌를 튼 채 편안히 앉은 자세를 유지했다.

인사이트RareHistoricalPhotos


[인사이트] 디지털뉴스팀 = 온몸이 타들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흐트러지지 않고 자세를 유지한 스님. 그는 생명의 불씨가 꺼져가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육체를 초월한 정신력을 보여주었다.


지난 1963년 6월 11일, 베트남 사이공 시내의 미국대사관 근처에서는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광경이 벌어졌다.


당시 베트남을 통치했던 고딘 디엠 대통령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으며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불교를 탄압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에 반발한 승려들은 길거리로 나와 항의했지만 정부는 오히려 이들을 체포해 감옥에 투옥하고 처형하는 등 탄압의 손길은 더욱 거세졌다.


이에 베트남 불교계의 선지식으로 추앙받던 틱광둑 스님은 특단의 결정을 내렸다. 독재정권의 부당함을 전 세계로 널리 알리기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르기로 한 것.


인사이트RareHistoricalPhotos


소신공양이 이루어지던 날 틱광둑 스님은 미국 대사관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고 곧이어 휘발유가 뿌려진 자신의 몸에 스스로 불을 붙였다.


화염은 스님의 몸을 순식간에 집어삼키며 활활 타올랐고 이 장면을 지켜보던 젊은 스님과 시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눈물을 흘렸다. 혼란한 상황 속 육신이 타들어가는 고통에도 틱광둑 스님은 미동도 않고 가부좌를 틀고 앉은 자세를 유지했다.


10여 분 뒤 틱광둑 스님은 뒤로 쓰러지며 숨을 거두었다.


스님은 소신공양을 시작하기 전 제자들에게 "내가 앞으로 넘어져 죽으면 흉조이니 모두들 희망을 거두어라. 하지만 뒤로 넘어져 죽는다면 결국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는 뜻이다"라는 유언을 남긴 바 있었다.


살이 불에 타는 아픔은 인간이 겪는 고통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고통에 속한다. 또한 불길에 휩싸인 몸은 본능적으로 움츠러들기 때문에 의식을 잃더라도 앞으로 고꾸라지기 마련이다.


인사이트RareHistoricalPhotos


하지만 틱광둑 스님은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앞으로 넘어지지 않음으로써 남겨진 사람들에게 승리에 대한 희망을 안겼다.


이후 스님의 소신공양에 충격을 받은 미국이 반미감정이 확산되는 걸 우려하여 디엠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고 베트남 불교계는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육체적 고통을 초월하고 마지막까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던 틱광둑 스님의 정신력이야말로 종교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과 자유에 대한 강한 열망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틱광둑 스님의 소신공양 장면은 당시 베트남에 파견되었던 AP통신 사진기자에 의해 촬영되었고, 이후 해당 사진은 1964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 사진은 서구 사회의 우월주의에 대한 비판과 억압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나타내는 역사적 상징물로 남아 전 세계적인 각성을 불러일으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