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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전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숨진 여고생의 피묻은 책가방에서 나온 편지 한 장

끝내 전하지 못한 편지 한 장을 가슴에 묻은 채 17살 여고생이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인사이트 / 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


[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38분,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아침이었다.


어떤 이는 자가용을 끌고, 어떤 이는 버스를 타고 자신의 목적지로 향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한강 너머 떠오른 햇살은 이상토록 눈부셨다. 모두들 멍하니 차창 밖을 바라보며 그리 특별하지 않은 하루를 시작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뉴스1


무학여고를 다니던 여고생 이모(17) 양은 이날 평소보다 10분 늦게 집을 나섰다.


새벽까지 미술 작품을 준비하느라 깜빡 늦잠을 잔 것이다. 압구정에 살았던 이 양은 성수대교로 향하는 16번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채 다리를 건너기 전에 이 양은 강 아래로 추락하고 만다.


24년 전 온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일어난 날이었다. 이 사고로 무학여고에서만 학생 8명이 숨졌다.


인사이트뉴스1


당시 사고 소식을 접한 무학여고 학생들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20명이 넘는 친구들이 여전히 등교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


교사들은 일일이 결석자 집에 확인 전화를 돌렸다. 이미 등교한 학생들도 집으로 전화해 자신의 무사함을 알렸다.


오전 내내 생사 확인으로 수십번씩 지옥과 천국을 오간 무학여고. 다행히 많은 학생들이 무사했지만, 끝내 8개의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았다.


인사이트뉴스1


그날 오후 이 양의 가족에게 피 묻은 책가방이 전달됐다. 그리고 그 속에는 차마 전하지 못한 이 양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편지의 수신인은 아버지였다. 얼마 전 아버지는 이 양에게 사랑의 매를 들었다.


이 양은 그런 아버지에게 "사랑하는 아빠 보세요. 불효를 너무 많이 저질러 정말 후회스럽습니다"라며 반성의 메시지를 보냈다.


'앞으로 잘하겠다', '효도하겠다', '사랑한다'는 말도 가득했다.


얼마나 전하고 싶었던 진심이었을까. 하지만 이 양은 끝내 이를 아버지 손에 들려주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17살, 화가가 꿈이었던 그리고 가족을 너무나도 사랑했던 이 양은 용인의 한 묘지에 잠들어 있다.


그리고 그 옆엔 1996년 세상을 떠난 이 양의 아버지가 함께 누워있다.


<이 양이 아빠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 전문>


사랑하는 아빠 보세요. 


아빠. 저는 요즘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릅니다…


아빠가 저를 때리셨을 때 제 마음보다 백배, 천배나 더 마음 아프실 아빠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아빠! 저를 때리신 것이라 생각지 마세요. 제 속에 있던 나쁜 것들을 때려서 물리치신 거라 생각하세요. 그래서 착한 것들로만 가득한 딸이 되게끔 하신 거라 생각하세요….


이런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면 설사 고통과 괴로움이 따를지언정 아빠가 저를 얼만큼 사랑하는지 또 제가 얼만큼 더 발전되어야 하는지를 모르고 지날 수도 있었겠지요. 아빠가 얼마만큼 힘드신 지도 모르고….


저를 혼낸 것을 몹시도 마음 깊숙이 괴로움이 있으시다면 아빠, 저를 위해서 한번 더 마음을 풀어주시지 않겠어요? 


아직은 덜 익은 열매이지만 비바람과 천둥 번개 서리를 이겨 낸 아주 멋진 열매로 아빠 앞에 서게 되도록 하겠습니다….


아빠, 부족한 저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제 마음이 아픈 만큼이나 저도 정말로 아빠를 사랑합니다… 


아빠. 저도 잘할께요. 아빠! 꼭 즐겁게 해드리겠어요. 이제부터! 아빠도 파이팅!


94년 10월 20일 아빠를 사랑하는 OO이가 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