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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故 노회찬이 꿈꾸던 아름다운 세상에 살고 싶습니다"

지난 7월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故 노회찬 의원이 '촛불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전한 말이 있다.

인사이트(좌) 뉴스1, (우) 창비


[인사이트] 이하영 기자 = 계절이 부지런히 움직여 가을의 옷을 입었다.


팔이 훤히 보이던 짧은 옷을 입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겹겹이 옷을 입고 다가올 추위를 걱정한다.


올여름 30도를 훌쩍 넘는 날씨가 한달 넘게 이어져 '불반도'라 불렸던 한반도 상황은 마치 누가 지어낸 이야기인 것만 같다.


찌는 듯 더웠던 올해 7월 23일, 정말 누군가 지어낸 것 같은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진보 정당의 입담꾼 故 노회찬이 투신으로 생을 마감한 일이다.


인사이트故 노회찬 생전 사진을 바라보는 시민 /  뉴스1


노회찬은 1956년 8월 31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무허가로 허술하게 지은 판잣집이 대부분인 초량동 산동네 셋방에서 그는 고등학교 진학 때까지 살았다.


산동네에서 셋방 살이를 해도 그는 주눅들거나 인생을 비관하지 않았다.


물질적 풍요보다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라 가르친 부모님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산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던 아버지는 중학교에 들어간 노회찬을 불러 이제 너도 이걸 들어야 한다며 토스카니니가 지휘한 베토벤의 '운명'을 틀어주었다.


그맘때쯤 어머니는 그에게 악기를 하나 고르게 했다. 가난해도 사람은 악기 하나쯤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크기가 크면 배우기 쉬울 것 같아 노회찬은 첼로를 선택했다. 덕분에 그는 첼로 켜는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후에 '문화인'이라 불리게 된다.


인사이트故 노회찬 빈소에서 왼쪽부터 유시민 작가, 심상정 의원  


문화인 노회찬은 무엇보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정의 투사'이기도 했다.


한창 사춘기 시절을 지나던 그는 부당한 일이 있으면 대들었다는 이유로 먼지나게 맞던 학생이었다.


1년 재수 후 서울 경기고등학교로 진학하며 학교 안에 머물렀던 작은 투사는 세상을 향해 팔을 뻗기 시작한다.


친구들을 모아 박정희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제작해 배포하기도 하고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74년 4월 3일에는 급기야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린다.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의 공동 시위 기획에 맞춰 교실 문을 잠그고 유인물을 낭독한 것이다.


관련자에게 사형을 선고하겠다 협박하는 긴급조치 4호가 발표 되었으나 노회찬의 주도로 당시 그와 같은 학교 학생들은 수업을 거부하고 농성을 지속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가고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다닐 때도 그는 끊임없이 정의를 부르짖는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한국 진보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거목이 되어있었다. 거목답게 그는 여러 단체의 초청강사로 활발히 활동했다. 


인사이트故 노회찬 빈소 앞 시민들의 조문 행렬 / 뉴스1


'우리가 꿈꾸는 나라'는 지난 2월 20일 창비 출판사 주최로 열린 '지혜의 시대' 특강 중 故 노회찬의 강연 '촛불시대, 정치는 우리 손으로'를 정리해 만들어진 책이다.


그는 강연에서 앞으로 우리 사회는 '촛불 이전'과 '촛불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촛불 시위 당시 외쳤던 '이게 나라냐'라는 구호. 입에서 입으로 오가며 나왔던 물음을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찾아왔다고 말이다.


앞으로 다가올 시대를 '촛불시대'라 부르며 그가 과제로 제시한 것은 크게 세 가지다.


평등, 공정, 평화. 불평등을 평등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고, 불공정은 공정으로 변화해야 한다. 또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평화가 정착된 사회로 바꾸어야 한다고 노회찬은 전했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그렇게 발전되어야 한다고 그는 희망에 차서 말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촛불시대'를 함께 만들어갈 줄 알았던 그는 지금 우리 곁에 없다.  


인사이트일반 재소자들의 감옥 공간 신문지 퍼포먼스로 보여주는 故 노회찬 의원 / 뉴스1


그가 싸늘한 주검이 된 지금, 우리는 포스트 노회찬을 찾는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 앞에 한 사람이 지금껏 해왔던 일들을 꺼내 놓는다. 


2004년 비례대표 8번 턱걸이로 제17대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 된 그는 놀라운 활약을 보여줬다. 


시민단체 모니터단이 선정한 국정감사 우수의원, 언론사 정치부 기자들이 뽑은 신사적인 의원, 시민운동가들이 최우수 의정활동 의원, 방송국 피디들이 선택한 최우수 의원 1등 등.


초선의원 4년 동안 그는 467건의 법안을 발의해 31건을 가결시켰다. 


이 외에도 호주제 폐지, 장애인 차별 금지, 비정규직 노동자와 취약계층 노동자 보호 법안 등의 입법 활동의 맨 앞에 서 있었다.   


많은 정치인들이 제 밥그릇 챙기기에 바쁘던 때 사회적 약자인 서민들의 밥그릇을 제대로 챙기기 위해 노회찬은 고군분투했다.


어느 때는 유머로, 또 어느 때는 피 끓는 절절한 목소리로 그는 우리 옆에 있었다.


인사이트서울 서대문구 신촌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故 노회찬 추도식 / 뉴스1


앞서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은 5천만원 상당의 불법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로 검찰 조사를 앞두고 유서를 남기고 사망했다. 


그에게 불법자금을 전달했다고 밝힌 댓글 조작 사건 주범 '드루킹' 김동원씨는 지난 11일 돌연 허익범 특별감사팀의 압박으로 인한 허위자백이었다고 고백했다.


김동원씨는 자신이 건넨 것은 4천만원이며 강의료였다고 밝혔다. 


노회찬 전 의원 또한 자신의 유서에서 4천만원 상당의 금액을 정치자금으로 받았으나 정상적인 후원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건의 진실공방이 다시 펼쳐질 예정이다. 진실이 무엇일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다만, 노회찬이라는 사람이 우리 곁에 없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많은 정치인을 비롯한 유명인사들과 시민들이 그의 장례식에 참가해 눈물을 흘리며 꽃을 바쳤다.


그 없이 다시 국정감사의 계절이 시작됐다. 여러 매체들을 통해 국민들은 이제 누가 우리의 편인지 들여다본다.  


부쩍 쌀쌀해진 날씨에 작은 촛불을 앞에 두고 생각해본다.


노회찬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하기 위해 '촛불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