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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소서 조선여성 성병검사 했던 '일본군 군의관'이 남긴 충격적인 기록

상하이 위안소로 끌려온 조선인 여성들은 그저 성욕을 해결할 '도구'로 취급당하며 삶 전체를 짓밟혔다.

인사이트영화 '눈길' 


[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조선인들은 이 일에 처음인 사람이 대부분이야. 위생적인 공동변소지"


일본군 성노예 범죄가 벌어진 상하이 위안소에서 군의관으로 있던 일본군이 한 말이다.


그들에게 조선 여성은 자신들의 성욕을 '깨끗'하게 해결해 줄 도구에 불과했고, 그런 일본군들 사이에서 조선 여성들은 인생 전체를 처참히 짓밟혔다.


지난 2일부터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전쟁과여성 인권박물관에서는 '상하이, 위안소의 시작'이라는 주제로 10월 한달간 특별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곳에는 1930년대부터 40년대까지 중국 상하이에서 조직적으로 꾸려진 위안소의 참상이 고스란히 전시돼있다.


인사이트서울시 


중국 상하이는 일본군 '위안소'가 처음으로 세워진 곳이다. 동시에 가장 많은 위안소가 꾸려진 도시이기도 하다.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은 경찰, 외무성, 육군성 등과 공모해 상하이에 위안소를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이 위안부 몇명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업자들이 조선에서 여성들을 데려오는 방식이었다.


그 수가 한 번에 3천명 가량이 될 때도 있었다. 업자들은 "돈을 벌게 해주겠다", "취직시켜 주겠다" 등의 말로 어린 조선 여성들을 꼬드겼다.


가난한 살림에 돈 한 푼 벌어보겠다고 업자를 따라나선 조선 여성들. 이들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상하이의 위안소였다. 


'위안부' 피해자 故 김순덕 할머니도, 故 하순녀 할머니도 각각 17살, 20살 때 이곳으로 끌려왔다.


인사이트영화 '눈길' 


위안소에 도착한 여성들은 신체검사와 성병검사를 받았다.


상하이 '양지아자이 위안소'에서 여성들의 성병 검사를 담당했던 일본군 군의관 아소 데쓰오.


그는 조선인 80명과 일본인 20명의 성병 검사를 마친 뒤 위안소를 "위생적인 공동변소"라고 표현하며 이런 기록을 남긴다.


"조선인들은 이 일에 처음인 사람이 대부분이다. 창부(위안부)의 질은 연령이 낮을수록 양호하다. 전쟁터로 보내는 창부는 연령이 낮아야 한다"


그의 주장대로 육군 위안소에 연행된 여성들은 대부분 나이가 어렸다. 또 여성 100명 중 80명이 조선인이었다.


인사이트서울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생생한 증언부터 일본군이 직접 남긴 기록까지.


이렇게 증거들이 넘쳐나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모든 게 해결됐다"는 말로 사과 한마디 없이 성노예 범죄를 덮고 있다.


조선인 '위안부'는 직업 매춘부였다는 망언을 한 정치인을 내각에 세우는가 하면, 소녀상을 철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샌프란시스코에 일방적인 자매결연 해지 통보를 하기도 했다.


반성 없고 뻔뻔한 일본 정부의 행태 속에서,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사과 한번 받지 못하고 하늘의 별이 되고 있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는 238명, 그중 우리 곁에 남아있는 생존자는 겨우 27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