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무능해서 조선이 심어둔 '스파이'로 의심받았던 일본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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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국내 누리꾼들로부터 한국의 독립에 커다란 공을 세웠다고 평가 받는 일본인 장군이 있다.


일본군 장성 '무타구치 렌야(牟田口 廉也)'가 바로 그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적인 항복을 선언한 후, 전쟁을 주도하고 이끌었던 인물 대다수가 군사 재판에 회부되어 사형 혹은 종신형을 받게 됐다.


그런데, 무타구치는 2년 후 불기소 처분을 받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재판에서 그의 '무능함'이 일본군에 큰 피해를 입힌 점이 감안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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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A급 전범 도조 히데키와 인맥으로 일본군 지휘관 자리에 앉은 무타구치는 '낙하산'답게 무능력했다.


그의 무능함이 가장 절정에 올랐던 때는 1944년 인도에서 벌어진 '임팔 전투' 때였다. 


당시 영국은 인도에서 방글라데시로 진격하며 일본군을 압박하고 있었다. 이에 무타구치는 인도를 침략해 영국군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하들이 영국과 전투는 물자 보급이 어렵다며 만류했지만,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며 진군을 강행한다. 


"보급은 적에게서 취하면 된다"


"무기 부족이 패배의 원인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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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명언(?)도 여기서 나왔다. 


"일본인은 초식동물이다. 길가에 있는 풀을 뜯어 먹으며 진격하라"


전투에 임하면서 보급을 무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이 같은 우를 범한 무타구치의 무능력함은 결국 5만 명의 일본군을 굶어 죽게 했다. 


대다수 군인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사망한 것. 이 일로 일본은 막대한 전투력 상실을 입게 됐다. 


이를 두고 한국의 일부 누리꾼들은 무타구치를 두고 "숨은 독립군이다", "대한민국 독립의 일등공신이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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