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16℃ 서울
  • 8 8℃ 인천
  • 16 16℃ 춘천
  • 15 15℃ 강릉
  • 16 16℃ 수원
  • 13 13℃ 청주
  • 13 13℃ 대전
  • 11 11℃ 전주
  • 13 13℃ 광주
  • 16 16℃ 대구
  • 18 18℃ 부산
  • 16 16℃ 제주

[서평] 돈 없이 도쿄서 사남매 키우는 외벌이 아빠의 유쾌한 양육 일기

일본에서 네 아이의 아빠로 사는 저자가 아이 키우는 법을 보면 점점 낮아져가는 우리나라 출산율에 해법이 보이는 듯하다.

인사이트어크로스


[인사이트] 이하영 기자 = '어른은 어떻게 돼?'라는 상큼한 제목의 책은 사실 경향신문 토요판에 게재된 코너 '박철현의 일기일회'라는 다소 묵직한(?) 뿌리를 가지고 있다.


신문 한 면을 촘촘히 채우는 4~5천자의 글. 3주에 한 번 실렸던 글은 온라인으로 수천건 넘게 공유 되는 인기글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해당 편집국에는 애독자라며 "연재를 늘려달라"는 전화도 종종 걸려왔었다는 후문을 저자는 당당히 프롤로그에 실었다.


그뿐인가. 이 책의 편집자야말로 연재의 열혈 독자로 글이 올라오면 항상 첫 번째로 '좋아요'를 누르던 사람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아이 키우기의 어려움을 주변에서 간접 경험한 기자는 결혼할 생각도 아이 낳을 생각도 전혀 없는 30대 싱글녀다. 


그 열렬한 인기에 살짝 삐딱한 마음을 품게 됐고 어쩌다 보니 책을 펼치며 이런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래? 얼마나 재밌는지 내가 봐주지!"


인사이트아빠 박철현씨가 찍은 사남매의 모습 / 어크로스


물론 퇴근길 지하철에서 딱 첫 장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삐딱함 따위와는 금세 이별했다.


대신 사람이 드문드문 앉아있는 지하철에서 '물개 박수'를 시전하며 너무 웃겨 눈으로 땀을 흘렸다.


기자에게 엔돌핀 넘치는 웃음을 선사한 박철현씨의 가족은 총 여섯 명으로 구성돼 있다.


저널리스트와 술집 주인을 거쳐 현재 작은 인테리어 업체 대표를 맡고 있는 박철현씨와 그를 데리고 살겠다(?)고 먼저 프로포즈한 그의 아내 미와코씨.


글재주도 있고 연기 능력까지 탁월해 벌써부터 미래의 대배우 포스가 나오는 첫째 미우, 똑소리나는 살림꾼으로 미래 기업 하나는 경영할 것만 같은 둘째 유나.


하이쿠로 저널리스트 한국 아빠를 단숨에 기죽이지만 태권도를 수년째 군소리 없이 열심히 배우고 있는 셋째 준, 아직 어리지만 등산도 할 줄 아는 당찬 꼬마 넷째 시온.


이렇게 매력적인 여섯 인물이 빚어내는 하모니는 웬만한 주말 가족드라마 저리가라 할 흡인력을 발휘한다.


인사이트축제 의상을 입은 사남매 왼쪽부터 준, 시온, 미우, 유나 / 어크로스


또하나 눈길을 끌었던 점은 이들 삶의 방식 속에 슬며시 녹아있는 일본의 '제도'다.


한국에서 아이 키우기는 점점 더 힘든 일이 되어가고 있다. 영어는 모국어가 아니지만 필수이기 때문에 어린 시절 꼭 배워둬야 할 과목 중 하나다.


수학·한글은 영어와 더불어 기본이고 여자아이는 발레, 남자아이는 태권도 정도는 해줘야 한다. 


게다 주기적으로 키즈파크나 놀이공원에 가서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 또한 의무 조항에 가깝다.  


양육수당이 나오고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다니면 지원금이 나오지만 어느 면에서나 부모 부담이 적지 않다.


기자에게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를 선택한 언니가 한 명 있다.


언니는 둘째를 낳으라는 부모님 말씀에 "돈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주변에서도 둘째를 키울 경우 심한 말로 부부가 '거지'처럼 살아야 겨우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단다.


아이 둘이라니. 한국의 서민층에게 그럴 경우 행복은 없다. 오로지 '생존'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아이를 넷이나 낳아 행복하게 기른다니. 기자에게는 흡사 '세계 7대 불가사의'만큼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인사이트(좌) 초등학교 5학년때 쓴 단편소설 '칠석의 밤'을 손에 든 첫째 미우, (우) 똑소리 나는 살림꾼 둘째 유나  


저자가 일본에서 아이를 넷이나 키울 수 있는 이유로 든 것은 교육비 부담이 거의 없는 환경과 절약정신 그리고 학력 차별이 없는 사회 분위기였다.


일본은 유치원에 다닐 때는 지자체의 학비 보조금 지원이 나오고 초등학교에 입학해도 취학지원금과 함께 아동수당이 연 3회 나온다.


또 의료비 지원 제도가 잘 되어 있어 초등학교까지는 병원에 가더라도 금전 부담이 전혀 없다.


2008년에는 고교교육까지 무상화하는 법이 통과돼 국공립 고등학교도 나라의 지원만으로 다닐 수 있단다. 그만큼 부모 부담이 줄어드는 셈이다.


한국도 교육부가 올해 하반기 중 법적 근거를 마련해 고등학교까지 전면 무상 교육으로 전환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공교육을 무상화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엄청난 사교육비가 우리 가계를 뒤흔들고 학생들을 병들게 하는 주범으로 손꼽히기 때문이다. 


소위 명문대에 들어가 밝은 미래를 마련하려면 비싼 돈 들여 사교육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박철현씨는 아이들이 대학에 가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며 오히려 아이들이 더 많은 교육을 바라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쉰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이런 생각이 가능한 이유는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일본은 반드시 4년제를 나오지 않아도 사회적으로 많은 제약이 없다.  2년제 혹은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가업을 물려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인사이트박철현씨와 사남매의 뒷모습 / 어크로스


그는 자신이 겪은 일본에서는 학력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을 겉으로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저자는 자신이 운영하던 술집에서 사장과 노동자가 한 술집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렸다며 직접 경험한 일본 사회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일본이 우리나라와 또 다른 점은 이것저것 잘하는 팔방미인 보다 한 가지에 충실한 전문가 양성에 힘쓰는 교육 방침이다. 


독립해도 될 정도로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된다면 '이치닌마에(一人前)' 즉 한 사람 몫을 온전히 해낸다고 인정 받는다. 


수학이나 영어는 젬병이지만 라면 하나만 제대로 만들어도 일본에서는 '장인'이 될 수 있다. 


유학파 많기로 유명한 우리나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유일하다.


학력 높기로 유명한 반면 물리나 화학, 경제, 문학 등 각 분야에서 노벨상을 한 번도 수상하지 못한데 비해 일본은 외국에 나가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이 종종 수상 소식을 전하기도 한다. 


이때 한 우물을 파는 일본의 장인정신이 부러움의 대상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물론 내수 시장의 규모 자체가 다르고 자원이나 중심 산업 등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일본과 한국 사회를 똑같이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럼에도 '무상교육', '학력차별 없는 사회', '전문가 양성' 등은 책을 읽으며 이런 문화들이 우리나라에도 수용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러 번 곱씹게 된다.


만약 그 바람이 이뤄지면 우리나라에 사는 아이들도 자살 대신 환하게 웃으며 오늘은 무엇을 할지, 내일은 어떻게 될지 꿈을 꾸게 될까.


인사이트2018년 여름 합숙훈련에서 서전트 점프 능력을 보여주는 셋째 준 / 어크로스


통계청의 인구동향조사 결과 2017년 기준 가임여성(15~49세) 1명당 합계출산율은 1.052명이다.


1명이 살짝 넘는 수치. 많은 사람들이 이제 나라가 없어질 거라며 여성들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낳아서 잘 키울 자신이 없으니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된다. 박철현씨네 사남매 이야기를 접하면서 기자는 남편과 아이가 있는 상황을 종종 상상해봤다.


가족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크게 웃고, 싸웠다가도 풀리고, 가끔은 아이를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우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남편과 아이의 존재는 지금처럼 계속 한국에 사는 한 '환상'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교육제도도 사회제도도 아마 변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태어날 아이를 끝없는 경쟁 속에 밀어 넣고 굳세게 키워 낼 능력도 경력단절 여성이 될 자신도 기자에게는 없다.


오늘 대한민국에 사는 청년들 중에는 나와 같이 '환상' 속에서만 가족을 그리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출산율 증가는 아직은 남의 일이다. 이 산적한 고민들이 조금은 해소될 기미가 보여야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조금은 올라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