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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죽인 '도로 위의 살인자'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음주운전으로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20대 남성은 이토록 '무책임'한 말을 내뱉었다.

인사이트경기재난안전본부 제공 / 뉴스1


[인사이트] 김나영 기자 =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음주운전으로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20대 남성은 이토록 '무책임'한 말을 내뱉었다.


이 말은 한순간에 사랑하는 남편이자 아빠를 잃게 된 한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겼다.


지난달 30일 0시 36분께 경기 용인시 영동고속도로 강릉 방면 양지터널에서 만취해 역주행하던 벤츠와 택시가 부딪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야근을 끝내고 택시로 귀가하던 승객 B(38) 씨는 즉사했고, 택시기사 C(54) 씨는 골절과 파열 등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인사이트gettyimagesBank


정작 사고를 낸 가해자 A(27) 씨는 가벼운 경상에 그쳤다. 당시 A씨는 면허 취소 수치인 혈중알코올농도 0.176%의 상태로 운전대를 잡았다.


사고 직후 숨진 B씨는 아내와 주말 부부로 살아오던 평범한 회사원이자 9살, 5살짜리 자녀를 둔 두 아이의 아빠라고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한 사람의 부주의로 한 가족이 풍비박산 난 것이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해당 사고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대리운전 기사를 부른 기억이 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자신의 실수 때문에 사람이 죽었는데도 그는 단지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로 마치 이 사고를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치부했다.


인사이트경기재난안전본부 제공 / 뉴스1


사건이 알려지자 숨진 피해자와 남은 가족들에 대한 동정 여론이 일었다. 언제나 그렇듯 '역주행 벤츠남'에 대한 비난도 들끓었다.


하지만 이러한 비난 여론도 잠시, 우리는 여전히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다. 


역주행 벤츠남 사건으로 청와대 국민 청원에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달라"는 글이 도배된 지 고작 이틀 후인 지난 1일. 


경기남부경찰청에 따르면 당일 자정 무려 93명이 음주운전으로 적발됐다.


그중에는 분명 '역주행 벤츠남' 사건을 접하고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 한 이도, 음주운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한다는 청원에 힘을 더한 이도 있을 것이다.


인사이트gettyimagesBank


'잠재적 살인마'라 불리는 음주운전. 음주운전의 폐해를 잘 알고 있음에도 여전히 '음주운전'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술'을 사랑하는 한국인들이 유독 '음주운전'에 약한 잣대를 들이미는데 있다. "집 앞인데 뭐 어때", "한 잔 정도는 괜찮아", "면허야 다시 따면 되지" 등.


음주운전으로 면허를 취소 당해도 50일 후면 다시 면허를 취득할 수 있기에 별다른 거리낌없이 습관적으로 운전대를 잡는 것이다.


사안이 이렇다 보니 음주운전을 밥 먹듯이 하는 이들은 "음주운전을 하면서 느끼는 스릴감과 쾌감에 중독됐다"고 자랑스럽게 말해 국민들을 분노케 하기도 했다.


인사이트경기재난안전본부 제공 / 뉴스1


유명 연예인들의 짧은 자숙기간도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떨어뜨리는데 일조했다.


가수 2PM 준케이, 슈퍼주니어 강인, 호란, 리쌍 길, 이정, 배우 구재이, 김현중, 윤제문, 방송인 노홍철에 이어 가장 최근 음주운전 논란을 빚은 윤태영까지.


이들 대부분은 "반성의 시간을 갖겠다. 물의를 빚어 죄송합니다"는 말로 방송 활동을 접었지만 모두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아 방송에 소리 없이 복귀했다.


대중에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연예인들의 이른 복귀는 아직 어린 10대, 20대들에게 '음주운전'이 경미한 범죄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줬다.


인사이트gettyimagesBank


가장 큰 문제는 주변 선진국들에 비해 우리나라의 음주운전 처벌 형량이 턱없이 미비하다는 것이다.


최근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숨지게 하고 그대로 달아났던 새마을금고 이사장은 2심에서 감형을 받았다.


피해자가 잘못을 뉘우치고 있으며 피해자 가족과 합의한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원심 형량이 너무 무겁다는 것이 감형 이유였다.


술을 마신 상태에서 뺑소니를 친 가해자에게 법원이 내린 선고는 고작 징역 2년 6개월이었다.


인사이트뉴스1


미국의 경우는 어떨까. 주마다 다르지만 '워싱턴' 주에서는 음주운전으로 인해 교통사고로 사망자가 발생했을 시 '1급 살인죄'를 적용해 최소 징역 50년에서 최대 종신형을 선고한다.


호주에서는 음주운전 상습범을 신문 톱기사에 기재해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방법으로 처벌한다. 태국은 '영안실 봉사'를 시키며 사망자의 시신을 직접 닦게 한다.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 운전자가 음주운전을 하면 술 제공자 및 동승자도 운전자와 같이 처벌을 받는다. 이때 운전자에게는 최고 5년 이하의 징역, 동승자와 술 제공자에게는 3년이하의 징역이 구형된다.


인사이트청와대 국민 청원


'음주운전'에 대한 인식 제고로 매년 음주운전 교통사고가 조금씩 감소하는 추세이나 여전히 매년 500명이 넘는 무고한 사람들이 음주운전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지금처럼 "나만 아니면 돼"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계속 가다간 언젠가 음주운전의 피해자가 내 가족 또는 나 자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한다.


"술을 마셔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로 숨진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줘서도 안 된다. 없던 일로 치부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음주운전'은 대한민국 범죄 입건 행위 중 20%를 차지하는 흔한 사건이며 엄연히 전과 기록에 남는 중대 범죄 행위이자 명백한 살인행위이다.


한 가장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음주운전' 문제가 더 이상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지 않도록 관련 법 제정과 인식 제고가 시급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