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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이 윤봉길 의사와 바꾼 '회중시계'를 죽을 때까지 간직한 이유

백범 김구 선생이 윤봉길 의사와 교환한 회중시계를 죽는 날까지 간직하고 있었던 사연이 전해졌다.

인사이트KBS 1TV '천상의 컬렉션'


[인사이트] 황효정 기자 = "시계가 아주 낡았네요. 선생님, 제 시계와 바꾸시죠"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제 시계는 6원이나 주고 산 좋은 시계입니다"


"그 좋은 시계를 왜 날 주나. 내 시계는 2원짜리 아주 오래된 시계일세"


"저에게 좋은 시계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제 시계는 앞으로 한 시간밖에 쓸 수 없으니까요"


그렇게 맞바꾼 시계를, 백범 김구 선생은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품에 지니고 있었다.


인사이트KBS 1TV '천상의 컬렉션'


지난 21일 방송된 KBS 1TV '천상의 컬렉션'에서는 우리나라 등록문화제 제441호에 등록된 백범 김구 선생의 유품, 회중시계에 대해 조명했다.


1949년 6월 26일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 서울 한복판에서 암살범에게 총살당한 김구 선생은 세상을 떠나면서 고작 19개의 유품을 남겼다.


피살 당시 입고 있었던 옷가지 10점, 직접 쓴 붓글씨 3점, 편지에 썼을 도장 5개가 전부였다. 


'평범한 보통 사람'이라는 뜻의 호 백범(白凡)에 걸맞게 평생을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았던 선생이었다.


그런데 김구 선생이 남긴 또 다른 유품이 있었다. 반짝거리는 회중시계로, 1900년대 미국 월섬(Waltham) 브랜드에서 출시된 제품이었다.


인사이트온라인 커뮤니티


검소의 대명사 김구 선생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껴질 이 금빛 물건의 주인은 사실 두 명이었다.


김구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십여 년 전인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본 천황의 생일파티에 참석한 윤봉길 의사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상대로 폭탄을 투척했다. 김구 선생과 도모한 거사였다.


이날 아침 김구 선생은 윤봉길 의사의 마지막 길을 위해 미리 고깃국과 좋은 반찬으로 아침 식사를 마련했다.


죽음을 앞둔 윤봉길 의사는 밥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구 선생은 단 한 숟가락도 뜨지 못했다.


인사이트KBS 1TV '천상의 컬렉션'


식사가 끝난 뒤, 김구 선생의 브랜드조차 없는 투박하고 낡은 회중시계를 본 윤봉길 의사는 제 것과 맞바꾸자고 제안했다. 거사 바로 전날에 사두었던 비싼 시계였다.


당시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에게 회중시계는 하나의 필수품이었다.


목숨은 하나,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기회도 단 한 번뿐이었던 이들에게 분초를 정확히 따질 수 있는 시계야말로 생과 사를 가르는 물건이었다.


이른바 '생명 시계'를 맞바꾼 두 사람은 그렇게 작별한다. 윤봉길 의사는 의거를 완수한 후 체포돼 형상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의 나이 25세였다.


김구 선생은 광복 후에도 시계를 간직하며 윤봉길 의사를 잊지 않았다. 죽는 날까지 그랬다. 


인사이트KBS 1TV '천상의 컬렉션'


두 사람이 함께 나눈 뜨거운 애국심과 결연한 의지, 따뜻한 우정은 회중시계의 금빛 반짝거림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한편 김구 선생은 당시 윤봉길 의사와의 헤어짐을 백범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윤 군의 시계를 받고 내 시계를 윤 군에게 주었다. 식장을 향하여 떠나는 윤 군은 자동차에 앉아서 그가 가졌던 돈을 꺼내어 내게 준다.


'왜, 돈은 좀 가지면 어떻소?' 하고 묻는 내 말에, 윤 군은 '자동차값 하고도 5, 6원은 남아요' 할 즈음에 자동차가 움직였다.


나는 목이 메인 목소리로,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 하였더니 윤 군은 차창으로 고개를 내밀어 나를 향하여 숙였다"


Naver TV '천상의 컬렉션'